-
학교로 보내는 안내 자료에 실수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발송 버튼을 막 누른 순간이었다. 털썩 의자에 등을 내던지고 기대어 잠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이내각 학교 담당자의 이름을 모두 찾아냈다. 행여나 업무 처리에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쪽지를 보냈다. 쪽지를 받은 선생님들이 고마움을 표현 하는 답장을 보내온다. 한 해 업무를 무사히 마무리한 축하인사를 서로에게 건넨다. 실수 덕분에 본 적 없는 선생님들과 마음을 나눈다.얼마 전 어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30년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두 무명가수의 듀엣 공연
202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1.01.11 15:17
-
주말 아침, 요 며칠 정신없이 바빴던 시간을 증명이라도 하듯 목이 따끔거리고 잔기침이 나온다. 따끈한 생강차 한 잔을 타서 앞에 놓고 무심히 텔레비전을 켰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 코로나19 뉴스 특보가 끝나고 화면을 채운 어느 광고에 마음이 무거워진다.화면 속 식탁에 둘러앉아 단란하게 식사를 하는 가족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기침이 이어지자 아들과 딸, 아내가 보내는 눈빛이 차갑다. 몇 번 스쳐보았던 광고인데 오늘따라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전염성 강한 독감을 미리 예방하고 조심하자는 것에는 백번 동의하면서도 가족이 아플
200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0.11.22 10:32
-
긴장한 탓인지 밤새 잠을 설쳤는데도 불구하고 이른 시간 눈이 떠진다. 오늘 규모가 큰 온라인 쌍방향 연수를 진행하게 되었다. 청주지역 학교운동부지도자 학생상담 역량강화 연수다. 연수를 맡기로 마음먹은 것은 운동부 코치님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이라는 체육과 장학사님의 설득에 못이긴 까닭도 있지만, 이번 기회에 온라인 쌍방향 연수를 새롭게 시도해 보리라는 생각에서였다. 코로나19로 학교는 갑작스럽게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좌충우돌 치열한 한 학기를 보내면서 아이들은 비교적 잘 적응한 듯 보인다. 그러나 배움에 주도적인 아이들과
199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0.10.14 12:28
-
긴 장마와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의 연수가 한창이다. 선생님들은 학기중에는 수업을 향한 열정으로, 방학에는 배움의 열기로 뜨겁다.지난 8월 21일, 초등 1급정교사 자격연수, 초등교감 자격연수, 중등교감 자격연수를 받는 선생님들이 한자 리에 모였다. 물론 온라인 공간이다. 단재교육연수원 온라인 스튜디오에서 ‘미래교육 토크콘서트’를 마련하고 교육감님과 각 연수과정을 대표한 세분의 선생님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치열하게 버텨온 1학기이기에 미래교육을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고민은 생생함을 넘어 비장하기까지 하다
198호 공감교실
추주연(청주교육지원청, 산남퀸덤)
2020.09.24 12:43
-
경쾌한 음악과 함께 커다란 모니터 화면에 ‘교육감과 함께하는 랜선톡톡’ 파란색 포스터가 시원시원하다.음악이 끝나자 스튜디오 투명한 창문 너머에서 시작을 알리는 손신호를 보내왔다. 해마다 열린 학교운영위원장 연수를 올해는 코로나19로인해 온라인으로 실시하게 되었다.김병우교육감님과 청주 및 남부권 대표 학교운영위원장님들이 함께하는 오늘 좌담회에 진행을 맡았다. 낯선 자리, 무거운 역할에 심장 뛰는 소리가 음악 소리보다 크다.다들 난생 처음 유튜브 실시간 방송 출연인데다 교육 현안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도 부담
197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0.08.19 14:47
-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교사로 살면서 책을 읽을 때 수업에 도움이 되는 책, 교육활동에 의미가 있는 책을 습관적으로 선택하곤 했다.그렇게 생긴 독서 편식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가끔 낯선 영역의 책을 읽게 되는 건 뜻밖의 선물 같은 일이다. 한여름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부질없는 이야기」 가 내게로 왔다.“난 불행하게도 ‘역사의 분쟁’에 휘말려 들었고, 지금도 바깥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수군댄다. 남들이
196호 공감교실
추주연(청주교육지원청, 산남퀸덤 주민)
2020.07.27 13:51
-
청주교육지원청 근무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점심시간 산책이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점심을 먹고 마을 산책길에 나선다. 사무실 창문 너머 나무들이 이리저리 춤을 추는걸 보니 바람이 차갑겠다 싶어 옷매 무새를 단단히 챙겨 나서는데 햇살 덕분인지 훈훈한 봄바람이다. 갈래길에서 망설임 없이 두꺼비생태공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동료 장학사님이 오늘 산책에서
194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0.05.04 14:42
-
언제나처럼 분주한 출근 시간. 옷장을 뒤적거려 깊숙이 숨어있던 청재킷을 찾았다. 오늘 아침 눈뜨자마자 부서 사무실 단톡방에 ‘수청데이’를 제안했기 때문이다. 한 주의 딱중간인 수요일, 편안한 청바지 차림의 출근 미션이다. 바쁜 시간이라 그런지 메시지 옆 확인 숫자 줄어드는 속도가 느리고 답글을 올리는 사람도 두어 명뿐. 다들 어떻게 받아들일지 감이 오질 않
193호 공감교실
추주연 선생님
2020.04.06 13:16
-
학교의 2월은 언제나 어수선하다. 지난 학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는 기간이며 동시에 선생님들의 학교 간 이동이 이루어진다. 나 또한 3월 1일자로 청주교육지원청으로 이동을 하게 된 터라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다. 연수원에서 진행하는 마지막 연수는 첫 발령을 앞두고 있는 신규 선생님들을 위한 연수다. 여러 선배 선생님들이 몇 날 며칠을 따로 모여
192호 공감교실
추주연
2020.03.04 10:59
-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배운 자치는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정형화된 이미지의 유토피아로남아있다. 지금 우리는 통제와 획일성의 교육이 아닌 자율과 다양성의 교육 자치를 꿈꾼다.유토피아를 넘어 현실의 교육 자치를 꿈꾸는 것이다. 그 바람을 ‘자치와 혁신, 교육이 지역을 살린다’는 슬로건에 담은 대한민국 교육자치 콘퍼런스가 지난 8월 7일부터 9일까지 한국교원대학
186호 공감교실
추주연(충북단재교육연수원, 산남퀸덤 주민)
2019.09.05 12:12
-
청주를 출발하여 2시간 거리. 가는 길이 곱지만은 않다. 꼬부랑 고개를 몇 개나 넘고서야 제천 간디학교에 도착했다. 좁은 1차로 길 옆으로 학교로 진입하는 길은 그보다 더 좁아 버스가 들어갈 수 없다. 할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걷는 길이 푸르고 한적하다. 학교 건물에 비하면 제법 큰 운동장 가운데 ‘왔슈?’ 라고 쓰여 있는 입술 그림의 환영 인사에 슬며시
185호 공감교실
추주연(충북단재교육연수원, 산남퀸덤 주민)
2019.08.09 13:31
-
아파트에는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작은 놀이터가 만들어져 있고, 주택가에도 놀이터를 겸한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그네와 철봉, 미끄럼틀까지 웬만한 시설은 갖춘 놀만한 공간입니다. 처음 아파트가 들어서고 한동안은 밤늦게까지 아이들 노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놀이터를 끼고 있는 집에서는 신경이 쓰였고, 때로는 주민의 민원거리가 되기도 했지요. 그런데 언제부터인
180호 공감교실
정문희 청주행복교육지원센터장
2019.03.11 13:50
-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에 대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뉴턴은 자신과 라이벌 관계였던 물리학자 로버트 훅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가 남보다 잘 보고 더 멀리 보았다면 거인들의 어깨에 올라섰던 덕분”이라고 썼다. 뉴턴 또한 거인임이 분명한데 ‘거인의 어깨에 올라섰다’는 것은 그의 과학적 성과가 자신의 힘만으로 가능할 수 없었다는
179호 공감교실
추주연(충북단재교육연수원)
2019.02.07 12:18
-
음성 지역 사회과 선생님들께 수업개선에 관한 내용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 해 추진해온 일들을 마무리 하고 내년도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쁜 11월이지만 사회교사로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좋은 수업에 대한 열망이 건드려져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수업은 발령을 받은 첫 해부터 지금까지 교사의 삶을 기쁘게도 하고 좌절케도 하는 숙제 같은 존재다.하루 할 일을 한나절에 해치우고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설레는 마음으로 음성교육청까지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바쁜 학사 일정을 해내고 오셨을 선생님들도 조금은 지
177호 공감교실
추주연(충북단재교육연수원)
2018.11.19 17:52
-
연수원 현관 앞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 주변의 초록이 깊어진 터라 배롱나무꽃의 색깔이 한층 더 선명하게 돋보인다.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꽃을 피우는 까닭에 배롱나무에 꽃이 피면 여름방학이 온다 하여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다. 방학이 소용없는 연수원 생활 이지만 백일을 이어 피는 배롱나무꽃이 언제나처럼 반갑다. 배롱나무꽃이
173호 공감교실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선생님
2018.07.30 11:12
-
토요일 아침, 출근 시간을 알리는 핸드폰 알람이 어김없이 울린다. 꼭 참석하고 싶어 손꼽아 기다린 워크숍이지만 오늘따라 날씨가 얄미울 정도로 화창하다. 살짝 꾀가 나는 마음을 뒤로 하고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워크숍 장소는 올해 내가 근무하는 충북단 재교육연수원이다. 나에게는 매일 아침 달려가는 익숙한 출근길이지만 오늘 모이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낯선 길일
172호 공감교실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2018.07.05 13:33
-
마을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말없이 그늘을 내어주고 있다. 아침나절 제법 굵은 비가 내린 덕분에 연두빛이던 느티나무 잎사귀는 초록빛이 되었다. “초록”이라고 말하는 순간 입안에 또로록 물방울이 굴러 간다. 맑은 날엔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참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겠지만 오늘은 갑작스런 비를 피하느라 빌려 쓴 우산들만 나무 아래 가지런히 놓
171호 공감교실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2018.05.31 13:39
-
참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다. 몇 년째 나를 괴롭히는 이명이 심해져서 서울 병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늘 시간에 쫓겨 이동하는 까닭에 KTX의 등장을 반겼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병원 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7년 전, 이석증으로 수업 중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뒤로 특정 음역에서만 청력이 떨어지는 특이한 증
170호 공감교실
추주연 선생님
2018.04.22 14:14
-
처음 찾아간 백비헌 2층 한옥마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배너 현수막을 설치하느라 분주한 마을신문 조현국편집장님, 아이들 챙기기에 여념이 없는 청소년 기자단 박은경 선생님과 반갑게 인사부터 나누었다. 한숨 돌리고 나니 나무향 고즈넉한 한옥 경관에 마음이 편안해진다.실내를 미처 다 둘러보기도 전에 카페에 울려 퍼지는 아이들 까르르 웃음소리가 경쾌하기 그지없
168호 공감교실
추주연 선생님(단재교육연수원)
2018.03.22 09:52
-
덴마크의 자유교육 관련 협회와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 중 몇몇이 비슷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졌다.“왜 이곳 덴마크에 왔나요?”덴마크의 교육제도와 사회시스템은 책이나 인터넷 정보로 알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직접 찾아가 만난 사람들에게서 가지 않고는 알 수 없었을 것들을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존재로서의 교사’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교사 양성 기관인 자유교
166호 공감교실
추주연(경덕중 교사)
2018.01.03 15: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