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은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교사로 살면서 책을 읽을 때 수업에 도움이 되는 책, 교육활동에 의미가 있는 책을 습관적으로 선택하곤 했다.
그렇게 생긴 독서 편식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 가끔 낯선 영역의 책을 읽게 되는 건 뜻밖의 선물 같은 일이다. 한여름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처럼 「부질없는 이야기」 가 내게로 왔다.

“난 불행하게도 ‘역사의 분쟁’에 휘말려 들었고, 지금도 바깥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수군댄다. 남들이 나를 책망하거나 잘못을 탓하는 건 두렵지 않으나 남들이 나를 ‘흠모’하는 건 두렵다.”
 

“나는 ‘역사의 오해’로 인해 15년 동안 억지로 정치 활동을 했다. 억지로 했기 때문에 끝까지 잘 하지 못했고, 손으로는 이걸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저걸 생각하곤 했다.”
- 「부질없는 이야기」 중에서

두꺼비마을신문 편집장 조현국 교수님이 번역한 「부질없는 이야기」를 읽고 구추백을 알게 되었다. 구추백은 중국 공산당 초기의 핵심 인물로 28살 공산당 최고의 지도 자가 되지만 1935년 국민당에 체포되어 36년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당대의 문인이자 혁명가였던 구추백의 고백은 놀라우리만큼 솔직담백하다. 죽기 전 자신의 마지막 이야기를 ‘부질없는 이야기’라 명명한 구추백은 표현과 달리 삶의 매순간 물러섬이 없었다. 그의 치열한 삶과 솔직한 고백은 진정한 혁명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그 과정이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진정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인지 돌아보게 한다.
얼마 전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에서 필경사의 출연에 눈길이 갔다. 필경사는 5급 이상 공무원의 대통령명의 임명장을 직접 쓰는 직책이라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임명장쯤은 하루에도 수천 장씩 찍어낼지 모른다. 그러나 공직자의 책임과 무게를 임명장 한 글자 한 글자에 담아내는 필경사의 하루는 어느 혁명의 시간 못지않으리라. 누가 그의 시간을 부질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수업을 하는 교사의 삶에서도, 학교를 지원하는 삶에서도 늘 역부족이란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있다. 「부질없는 이야기」를 읽으며 부족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겸허함을 배운다. 코로나19는 학교의 풍경을 하루아침에 바꾸어 놓았고, 혁명과 같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일손이 부족한 학교로 아침 등교 맞이 지원을 나가는 오늘은 구추백의 성찰과 필경사의 정성을 닮은 하루다.

추주연(청주교육지원청, 산남퀸덤 주민)
추주연(청주교육지원청, 산남퀸덤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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