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원 현관 앞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활짝 피었다. 주변의 초록이 깊어진 터라 배롱나무꽃의 색깔이 한층 더 선명하게 돋보인다.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뜨거운 여름날 꽃을 피우는 까닭에 배롱나무에 꽃이 피면 여름방학이 온다 하여 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나무다. 방학이 소용없는 연수원 생활 이지만 백일을 이어 피는 배롱나무꽃이 언제나처럼 반갑다.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핀 화단을 포함하여 연수원 가장자리를 따라 2.3km 정도 이어지는 둘레길이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얼을 이어받고자 지은 연수원 이름처럼 둘레길 이름도 ‘단재둘레길’이다. 올해 내가 맡은 선생님들 연수에 단재둘레길을 체험하는 생태감수성 강의를 시도하기로 했다.
 오늘은 생태감수성 강의가 있는 날. 아침부터 후끈한 공기가 염려되었지만 강의에 대한 기대도 뜨겁다. 야생화 단지에서 강의가 시작되고 ‘생태교육연구소 터’에서 나오신 강사님의 안내를 받으며 확대경을 활용 하여 풀과 무당벌레를 들여다보았다. 야생화만 예뻐라 하고 보다가 잎에 붙어있는 검은 몸체에 노랑 무늬 알록달록한 무당벌레 애벌레를 보는 것이 새롭고 신기하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확대경으로 본무당벌레가 친구처럼 친근하다.
 무당벌레는 진딧물을 잡아먹으니 사람에게는 익충이다. 그런데 개미는 진딧물로부터 단물을 얻기 위해 진딧물을 보호한다. 마치 우유를 얻기 위해 젖소를 키우는 목동처럼 말이다. 어쩌면 개미가 인간보다 먼저 목축을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진딧물을 보호한다고 개미를 나무랄 것이 없다. 생태계에서는 공생관계도 천적관계도 옳고 그름이 아니다. 그저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줄 뿐이다.
 잣나무 숲길에서 출발하여 다시 걷다가 작은 공터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숲을 둘러보는 우리에게 강사님이 거울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이마에 거울을 대고 땅을 살피고, 코끝에 거울을 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거울 하나로 산새가 되기도 하고, 개미가 되기도 한다. 새들은, 개미들은 이렇게 세상을 보겠구나 싶다. 보지 못하던 세상이 보인다. 공터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개미와 진딧 물, 무당벌레가 되어 서로 잡기도 하고 보호해 주며 잡기 놀이 삼매경에 빠졌다. 넘어질듯 아슬아슬 뛰어다니고 웃다 보니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힌다. 땀을 식힐 겸 눈가리개를 하고 앞사람의 어깨에 손을 의지해 산길을 걸었다. 그동안 듣지 못했던 새소리, 벌레 소리, 나뭇잎 밟는 소리가 들려온다. 깊고 진한 나무껍질 냄새와 신선한 풀냄새가 바람 속에 느껴진다.
 도시토박이라 숲체험이 생소한 나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자연을 만나고 우리도 늘 그 품속에서 살았음을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어린아이처럼 깔깔대며 자연과 친구가 된 시간, 인간의 시선이 아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만나는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마을에서 주변의 자연을 만나는 시간이 더 많이 늘어나면 좋겠다. 숲에서 숲과 함께 놀며 지구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임을 아이들이 느끼게 되면 좋겠다. 오늘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은 그 시도를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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