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주말 우리가 타게 될 베를린행 열차승차권
▲ 손기정 선수의 열차승차권

 토요일 아침, 출근 시간을 알리는 핸드폰 알람이 어김없이 울린다. 꼭 참석하고 싶어 손꼽아 기다린 워크숍이지만 오늘따라 날씨가 얄미울 정도로 화창하다. 살짝 꾀가 나는 마음을 뒤로 하고 나설 채비를 서둘렀다.
워크숍 장소는 올해 내가 근무하는 충북단 재교육연수원이다. 나에게는 매일 아침 달려가는 익숙한 출근길이지만 오늘 모이는 사람들 대부분에게는 낯선 길일 것이다. 서울, 경기, 세종, 대구, 울산, 부산, 경남, 전북, 전남….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일찌감치 출발해서 점심 전에 도착한 분들과 여유 있게 보리밥 한그릇 쓱싹 비벼 먹고 붉은 보리수가 조랑조랑 열린 연수원 주변 단재둘레길을 절반쯤 돌아보고 나니 하나 둘씩 사람들이 자리를 채운다. 희끗한 머리에 배낭을 둘러매고 얼굴 가득 미소만큼은 청년 그대로인 전국의 통일교육 1세대 선생님들이시다. 명단 속에는 퇴직한 선생님의 성함도 여럿 보인다.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 주신 선배 선생님들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젊은 선생님의 씩씩한 인사와 퇴직 선생님의 울컥 떨리는 인사로 워크숍이 시작되었다.
 엊그제 당선되어 업무에 복귀한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 충북교육감님도 잔뜩 쉰목소리로 달려와 격려의 말씀을 들려주시고, 저녁 무렵부터는 세종시교육감님이 한자리를 채워 일정을 함께 해 주셨다. 통일에 대한 열망은 거리도, 역할과 직위도 무색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준다.
 한자리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이름표를 만들어 통일이 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적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기차타고 블라디보스토크 가기, 묘향산 트래킹하기, 모란봉 계단에 앉아 커피 마시기, 북한이 고향인 아버지 모시고 북한으로 여행 가기, 남과 북의 아이들이 한바탕 어울려 놀 수 있는 민속놀이 한마당 열기. 은발 노장 선생님들의 소원이 천진난만 아이들 같다.
 쉬는 시간, 한 선생님이 유라시아 횡단열차 승차권을 슬쩍 내민다. 베를린행 열차를 타게 될 어느 주말을 꿈꾸며 소망을 담아 만들어 왔다는 승차권을 선물처럼 받고 심장이 콩닥거린다. 1936년 손기정 선수는 경성을 출발한 열차를 타고 신의주와 만주, 시베리아, 모스크바, 바르샤바를 거쳐 베를린에 도착했다고 한다.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거쳤던 그 여정을 우리가 이어갈 날이 다가오는 지금이 어쩌면 우리에게 다시없는 소중한 기회의 시간일지 모른다. 비단 분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눈앞에 놓인 여러 갈등과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머리를 맞대는 사람들이 있다. 통일은 화해와 평화, 통합을 일구어 가는 과정을 함께 하자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공동체를 상상하고 평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날 때 한걸음 한걸음 다가갈 것이다. 오늘 그렇게 모인 사람들의 끝없는 이야기꽃으로 토요일 밤이 하얗게 깊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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