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랜만에 무궁화호를 탔다. 몇 년째 나를 괴롭히는 이명이 심해져서 서울 병원을 찾아가는 길이다. 늘 시간에 쫓겨 이동하는 까닭에 KTX의 등장을 반겼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병원 가는 시간을 늦추고 싶은 것은 어린아이나 어른이나 매한가지인 모양이다.

  7년 전, 이석증으로 수업 중에 쓰러져 응급실에 실려 간 뒤로 특정 음역에서만 청력이 떨어지는 특이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말하는 것이 직업인데다 사람 만나 이야기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는 나에게는 참 속상한 일이었고 어디 내놓고 시원하게 말도 못하는 고민거리였다.

 나의 청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 동안 다행히 기술은 점점 발달해서 특정 음역의 청력을 높이는 보조기구가 나왔다고 한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지만 시도해 보자는 의사선생님 말씀에 기대 반 의심 반 테스트를 수락했다. 그동안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라는 의사선생님의 덤덤한 위로가 날카롭게 가슴을 스친다. 듣기 위해 남모르는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던 스스로가 안쓰러워진다.

  한나절 꼬박 걸려 각종 검사와 진료를 마치고 퍽 피곤했지만 오는 길에 눈여겨 봐두었던 근처 예쁜 골목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길 하나를 건너니 골목길 안쪽으로 아담한 한옥이 늘어서 있고 담벼락마다 봄꽃들이 팔짱을 낀 듯 여럿이 한들거린다.

 모처럼의 여유를 누리고 싶어 햇살 따뜻한 골목길 벤치에 앉는 순간, 시험 삼아 낀 기계를 통해 바람에 흔들린 꽃들이 담벼락에 부딪히는 소리가 사그락 들려온다. 전에는 미처 듣지 못한 소리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소리를 듣고 있자니 알 수 없는 눈물이 났다. 애꿎은 눈두덩이를 꾹꾹 눌러대는데 문득 몇 년 전 우리 반이었던 한 아이가 떠오른다. 학교에서 다른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싸우기가 일쑤였던 아이는 소리에 아주 예민하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작은 소리까지 크게 들리는 바람에 예민한 청각만큼 신경도 예민했다. 쉬는 시간이며 점심시간, 청소 시간에 아이들이 웃고 장난치고 떠드는 소리에 참기 힘든 고통을 느꼈던 것이다. 들리지 않는 사람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견디기 힘들었겠다 싶다. 그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반 아이들과 함께 본 영화가 생각난다.

  영화 ‘지상의 별처럼’에서 인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8살 이샨의 눈에는 물고기가 친구로 보이고 책 속의 글자와 숫자들은 눈앞에서 날아다닌다. 이샨의 엉뚱한 상상력은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상하게만 보여 친구들에게는 왕따였고, 선생님한테는 글 하나 제대로 읽지 못하는 문제아로 여겨졌다. 이샨에게 문제가 있다고만 생각한 부모는 이샨을 엄격한 기숙학교로 보내 버리고 이샨은 자신의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낯선 환경에 홀로 남겨진다.

 이 때 이샨에게 미술 선생님 니쿰브가 나타난다. 니쿰브 선생님은 이샨에게 난독증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장애를 가능성으로 바꾸어 이샨에게서 별처럼 빛나는 능력을 발견한다.

 니쿰브 선생님은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특별하다.”라고 말한다. 하나의 기준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기 전에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라는 것이다.

▲ 영화 '지상의 별처럼' 한 장면

 나는 우리 반 아이의 마음을 니쿰브 선생님처럼 제대로 보듬어 주었을까? 아이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나를 스쳐간 많은 아이들이 지녔던 아픔과 상처를 미처 다 품어주지 못했을 텐데. 마음 한쪽이 휑하니 시려온다.

  병원 책꽂이에서 우연히 본 ‘삶에 귀 기울이세요’라는 글귀가 마음에 남는다. 생각해보면 나의 특별한 청력으로 인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훨씬 많다. 사람들의 말을, 아이들의 말을 듣기 위해 애쓰며 누구보다 경청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

 이제는 나의 삶에 애틋한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싶다. 누군가의 삶에, 그리고 피어있는 꽃에 마음으로 귀 기울이고 싶은 날이다. 세상의 모든 특별한 존재에게 귀 기울이고 살고 싶다.

▲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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