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동마을 느티나무

 마을 가장자리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말없이 그늘을 내어주고 있다. 아침나절 제법 굵은 비가 내린 덕분에 연두빛이던 느티나무 잎사귀는 초록빛이 되었다. “초록”이라고 말하는 순간 입안에 또로록 물방울이 굴러 간다.
 맑은 날엔 마을 사람들이 느티나무 그늘에서 참을 먹고 이야기꽃을 피우겠지만 오늘은 갑작스런 비를 피하느라 빌려 쓴 우산들만 나무 아래 가지런히 놓여있다. 마을 곳곳에서 우산을 빌리고 비가 그치면 다시 곳곳에 놓아두면 그만이다. 다음 비가 내릴 때 또 누군가에게 든든할 우산들이다.
 느티나무 앞에 갓골마을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는 이곳은 풀무학교가 있는 충남 홍성의 홍동마을이다. 3년동안 벌써 네 번째 걸음이니 홍동마을과의 인연이 제법 깊다. 이번엔 30여명 선생님들의 마을교육공동체 연수를 진행하느라 맘 편히 누리지만은 못했지만 올 때마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느티나무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느티나무 바로 뒤 낡은 건물은 괴테의 시가 벽을 한가득 채우고 있는 헌책방이다. 오래된 집을 개조한 느티나무 책방은 홍동마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한적한 날이면 아침나절부터 눌러 앉아 빛바랜 책 속에 파묻힐 텐데…. 휙 하니 돌아보고 가기엔 아까운 곳이다.

▲ 홍동마을 느티나무 책방

 느티나무 책방에는 직원이 없다. ‘책값은 여기에’라는 글귀와 함께 돈통이 놓여 있을 뿐이다. 전국 방방곡곡 헌책방에서 발품을 팔아 어렵게 구한 책들이라는데 도난당할까 염려하는 것은 드나드는 손님들의 몫일 뿐, 정작 책방 주인은 대수롭지 않은 모양이다.
 서울 토박이로 살던 책방 주인은 귀촌해서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헌책방을 만들고 출판사까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저 마을에 책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만들었으니 이해타산은 애초에 없었다.
 책방 주인이 운영하는 출판사 이름도 걸작이다. ‘그물코 출판사’라는 이름은 매듭으로 연결돼 있는 그물처럼 우리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상생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출판사 이름처럼 이곳 홍동마을 사람들은 각자 도생하지 않는다.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공동체다.
 마을이 학교가 되고 학교가 마을이 된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의 품속에 자라 마을과 함께 늙어간다. 갓골마을에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을이고, 학교이고, 서로에게 선생님이다.
  느티나무 책방은 너무 낡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까닭에 올해가 가기 전에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라고 한다. 모든 생명체가 그러 하듯 책방도 마을도 생로병사를 겪는 것이 당연지사다. 오래된 친구 같은 느티나무 책방이 생명을 다하기 전에 다시 한 번 들러야겠다.
 

 이번 홍동마을 나들이에서는 자꾸만 두꺼비마을 사람들이 떠오른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평생을 아파트 생활만 해온 나에게 마을이라는 이름을 알게 해준 사람들이다. 조금씩 연대를 일구어 가는 두꺼비마을 사람들이 있어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공동체라는 이름을 꿈꾸어 본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 학교가 마을을 향해 문을 열고 아이들이 그 속에 경계 없이 뛰놀게 되길 바란다. 그렇게 어울려서 함께 자라고 늙어가면 좋겠다.

우리 모두는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한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 반쯤 기억 속에 또 반쯤은 마음속에 그려보며, 그저 이따금 언뜻언뜻 볼 수 있는 그 곳의 이름은 공동체. 그곳에서는 말이 목에 걸리지 않고,
열정으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 독수리별의 공동체 中에서 - 

 

▲ 추주연(단재교육연수원)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