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지역 사회과 선생님들께 수업개선에 관한 내용으로 강의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한 해 추진해온 일들을 마무리 하고 내년도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없이 바쁜 11월이지만 사회교사로 살아오면서 늘 마음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좋은 수업에 대한 열망이 건드려져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수업은 발령을 받은 첫 해부터 지금까지 교사의 삶을 기쁘게도 하고 좌절케도 하는 숙제 같은 존재다.
하루 할 일을 한나절에 해치우고 점심 식사도 거른 채 설레는 마음으로 음성교육청까지 달려갔다. 마찬가지로 바쁜 학사 일정을 해내고 오셨을 선생님들도 조금은 지친 기색이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서로 권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강의가 시작되자 먼저 선생님들께 질문을 던졌다. “왜 이곳에 오셨나요?” 난데없는 질문이어서일까? 옆자리 선생님과 난감한 듯 시선을 주고받으시더니 새로운 수업 기법을 배우고자 왔노라 하신다.
다시 선생님들께 질문을 던졌다. “이번엔 ‘나는 왜 수업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한 분 한 분 선생님들이 바라는 수업과 아이들의 모습을 말씀하셨다. 수업이 아이들에게 길을 비추어주는 등대 같기를, 배움을 통해 더 가볍고 자유로워지기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각자의 색깔을 찾는 아이들이 되기를,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그래, 그런 소망으로 우리는 수업을 한다.

사이먼 사이넥은 그의 저서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 위대한 리더는, '결과(What)'가 아니라 '이유(Why)'를 설득시킨다고 말한다. 영감을 주는 리더는 '이걸 하자, 이렇게 하자'가 아니라 '왜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가'를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그들의 행동과 열정을 이끌어낸다.
이제 우리는 각자에게 물어본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왜 수업을 하는가?”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물어볼 일이다. “왜 이 일을 하는가? 왜 공부를 하는가?”
교사와 아이들이 함께 행복한 수업을 꿈꾸기에 ‘나는 지금 이 일을 왜 하고 있는지, 우리가 하는 일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으려 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은 결코 행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1963년 여름, 25만의 군중이 킹목사가 연설하는 워싱턴 광장에 운집했습니다. 초대장을 보내지도 않았고 날짜를 확인할 웹사이트도 없었습니다. 킹목사는 미국 유일의 명연설가도, 유일하게 핍박받는 민권운동가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미국을 바꾸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왜’, 즉 자신이 믿는 바를 설파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그들 중 킹목사를 위해 그곳에 나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그곳에 나왔습니다. 그들이 미국에 대해 믿는 바, 그것이 그들을 서게 한 힘이었습니다.
 킹목사는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에게는 계획이 있습니다.”가 아닙니다. 우리가 진정 끌리는 리더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는 리더입니다. 그들은 “왜”에서 출발합니다.”
- 사이먼 사이덱의 TED 강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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