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 있는 주요 도로명들은 ‘성화로’, ‘신성화로’, ‘신화로’(개신동과 성화동을 연결), ‘성봉로’(성화동과 봉명동을 연결) 등 대부분이 ‘성화동’이라는 지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명명되었는데 예외인 도로명이 있으니 바로 ‘장전로’다.

 

‘장전’은 어떤 의미일까? 흔히 총포에 탄알이나 화약을 재어 넣는 것을 ‘장전(裝塡)’이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일까? ‘장전’이 표기된 지도를 통해 그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사진2> 지도에 동그라미로 표시되어 있는 ‘長田里(장전리)’는 현재 위치로 어디쯤일까? 오른쪽에 있는 ‘原興(원흥)’이 산남동 원흥이방죽 일대에 있던 마을이고, ‘원흥’과 ‘장전리’ 사이에 있는 산이 구룡산이므로 ‘長田里(장전리)’는 현재 성화동 지역에 있었던 마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3>의 지도를 보면 開新里(개신리)와 農村里(농촌리) 사이에 ‘長田(장전)’이 보인다. 그런데 ‘장전’ 양쪽에 괄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공식적인 마을 이름은 농촌리로 바뀌었고 그 지역의 옛 이름을 남겨 놓은 듯 하다. 

‘농촌(農村)’이라는 지명이 나왔으니『청주지명유래』에 나오는 ‘성화동’의 유래와 연혁을 살펴보면 “성화동(聖化洞)은 본래 청주군(淸州郡) 남주내면(南州內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다. 저산성 산지(低山性山地)여서 농사를 주로 짓게 됨으로써 농촌(農村)이라 하였다 
고 한다. 1914년 일제(日帝)의 행정구역 통폐합 정책에 따라 가서리(駕西里) 밑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농촌리(農村里) 일부를 병합하여 농촌리(農村里)라명명하고  사주면(四州面)에  편입하였다. 1963년에  농촌동(農村洞)으로  바꾸었고, 1990년에  다시  농촌동(農村洞)을 성화동(聖化洞)으로 개명하였다.”고 나온다. 

이처럼  지명유래를  통해  성화동은  최근에  개명된  동이고, 앞에서 본 지도들을 통해 ‘장전’은 현재 성화동(옛농촌동·농촌리) 지역에 있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장전’은  한자가  탄알과  관련된 ‘裝塡(장전)’이  아니라 ‘長田(장전)’이므로 ‘긴  밭’을  뜻하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유래비가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다.

사진4: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마을 지명 유래비>
사진4: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마을 지명 유래비>

이 유래비를 보면 성화동에 있던 자연마을 중에 ‘긴밭재’가 있는데 ‘긴밭재’는 ‘길게 늘어진 밭에 있는 고개’로 고개가 기다란 밭과 연결되어 그 고개를 ‘긴밭재’라 부른 것이며 ‘장전(長田)’으로도 부른다고 기록되어 있다. 

‘긴밭재’는 고개 이름이었다가 마을 이름이 되었는데 택지개발이 되기 전에 성화동 도로변에 있던 마을이다. 


‘긴밭’의 ‘긴’은 ‘길다’(長)의 활용형이므로 ‘긴밭’은 ‘기다란 밭’ 즉 ‘장전(長田)’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곳에 기다랗게 늘어진 밭이 있어서 그 이름을 ‘긴밭’이라 한 것이다. 이 ‘긴밭’에 대한 한자 지명이 ‘장전’(長田)이다.

 

<사진5>의 지도들에 보이는 ‘긴밭재’는 고개 이름이 아니라 마을 이름으로 쓰인 것이다. 고개 밑에 마을이 형성되자 그 고개 이름을 마을 이름으로 삼아 그렇게 부른 것이다. ‘긴밭재’는 1500년대에 자연마을로 시작하여 1760년대에는 25호가 살았다고 전한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간직한 ‘긴밭재 ’ 즉  ‘장전’으로 인해 현재 ‘장전로’라는 도로명 
이 생긴 것이다.

‘긴밭재’와 연관되어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마을 유래비 외에 청주성화휴먼시아 4단지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성화마트 옆에 장전(진밭재)마을 유래비도 세워져 있다.

이 유래비에는 ‘긴밭재’가 ‘진밭재’로 되어 있다. ‘진밭재’는 ‘긴밭재’가 변한 것으로 ‘l’ 모음 앞에서 ‘ㄱ>ㅈ’의 변화에 따라 ‘긴밭재’가 ‘진밭재’로 나타난 것이라고 한다. 

장전(진밭재)마을 유래비에는 “옛날에 이 마을에 젊은 농부 내외가 작은 고갯길 길가에 있는 밭 한 뙈기에 농사를 지으며 살았으나 그 농사로는 가난을 면할 수가 없었다. 하루는 내외가 밭을 매러 나갔는데 때는 7, 8월의 뙤약볕이요 아침밥마저 든든히 먹지 못한 아내는 더위와 배고픔에 지치고 힘들어 그만 남편 몰래 도망가고 말았다. 같이 일하던 남편은 그 밭고랑이 길어서 아내가 도망간 것도 모르고 일하다 아내를 놓치고 말았다. 

그 후 이 마을은 긴밭재(진밭재)라는 명칭으로 불렸다고 전하고 있다. 가슴이 찡한 이야기인데 일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또 밭이 얼마나 길었기에…….

현재 성화동에서는 ‘긴밭재’라는 마을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 택지개발이 되면서 옛 마을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전 지도들을 통해 그 위치는 대략 알 수 있는데 성동교회 대각선 맞은편이면서 장전방죽(장전유수지) 건너편에 있었으므로 현재 성화동 남양휴튼아파트가 들어선 자리가 ‘긴밭재’ 마을이 있던 곳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긴밭재’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지 않아 사람들에게 점점 잊혀지다. 그렇지만 성화동에는 마을 유래비가 2개나  있고, 또한 ‘장전(長田)’이라는  이름을  살려 ‘장전로’라는 도로명과  도로명주소도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성화초등학교  앞에  있는  공원의  이름이 ‘장전공원’이고, 성화개신죽림동  행정복지센터  뒤편에  있는 옛 ‘장전방죽’이 현재 ‘장전유수지’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긴밭재’라는 마을 이름의 명맥을 ‘장전(長田)’으로 잇고 있는 것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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