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 도로명 유래도 알고 상가도 알고 ④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로’ 도로명 표지
청주시 서원구 ‘구룡산로’ 도로명 표지

‘산남동’(山南洞)에서 ‘산남’(山南)이라는 마을 이름은 “구룡산의 남쪽이 되므로 산남(山南)”이다. 이 산남동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산이 바로 ‘구룡산’(九龍山)이다. 그리고 산남동에 있는 법원과 검찰청 뒤로 길게 이어진 도로, 도로명은 ‘구룡산로’(九龍山路)이다.


이처럼 ‘산남’이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와 ‘구룡산로’라는 도로명을 고려하면 산남동과 구룡산은 밀접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구룡산로’의 도로명 부여 사유가 “도로 인근에 위치한 구룡산 명칭 반영”이므로 당연히 산남동에 ‘구룡산로’를 도로명 주소로 사용하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1,116개의 ‘구룡산로’ 도로명 주소를 확인해보니 산남동에서 사용하고 있는 ‘구룡산로’ 도로명 주소는 의외로 8개에 불과했다. 왜 그럴까?

 

‘구룡산로’의 도로 구간, 산남동 구간은 길지 않다
‘구룡산로’의 도로 구간, 산남동 구간은 길지 않다

<사진2>에서 ‘구룡산로’의 도로 구간을 보면 왼쪽 가경천 부근의 기점(개신동 750, 개신성화사거리)에서 오른쪽 무심천 부근의 종점(수곡동 5-1, 남들공원)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런데 ‘구룡산로’ 전체 길이 4,346m 중 산남동에 해당되는 부분은 일부이고 대부분이 수곡동과 모충동이다. 실제 1,116개의 ‘구룡산로’ 도로명 주소 중 수곡동에 598개, 모충동에 422개가 있을 정도다. 정작 구룡산과 인접한 산남동에는 8개, 성화동에는 88개만이 ‘구룡산로’라는 도로명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

산남동과 성화동은 구룡산 인근에 있으면서도 ‘구룡산로’라는 도로명 주소가 비록 적게 사용되는 지역이지만 구룡산으로 인해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삭막한 아파트 단지들 사이에 있는 숲(구룡산)은 맑은 공기는 물론 등산과 산책 등 주민들에게는 소중한 자산이다.

 

 구룡산 입구(왼쪽)와 정상(오른쪽)에 있는 ‘九龍山’(구룡산) 표지석들
구룡산 입구(왼쪽)와 정상(오른쪽)에 있는 ‘九龍山’(구룡산) 표지석들

그렇다면 ‘구룡산로’라는 도로명의 근간인 ‘구룡산’은 어떻게 ‘구룡산’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구룡산’ 입구와 정상에 있는 위 표지석(사진3)들을 보면 짐작이 가겠지만 ‘구룡’(九龍) 즉 ‘아홉 마리 용’과 관련이 있다.

예전에 구룡산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이 산을 ‘구렁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구렁봉’의 ‘구렁’을 ‘구렁이’로 이해하고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여겼다. 그런데 ‘구렁봉’의 ‘구렁’은 ‘구렁이’의 ‘구렁’이 아니라 ‘구룡’(九龍)이 변한 것이다. 지명학적으로 보면 ‘구룡>구령>구렁’의 변천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산남동을 감싸고 길게 이어져 있는 구룡산 모습       사진_이홍일(원흥닭발통닭)
산남동을 감싸고 길게 이어져 있는 구룡산 모습       사진_이홍일(원흥닭발통닭)

실제 구룡산은 <사진4>에서 보이듯이 산이 마치 아홉 마리의 용이 이어진 듯 긴 모습이 특징이다.

그래서 ‘구룡산’(九龍山)이나 ‘구룡봉’(九龍峯)이라는 지명은 “산이 아홉 마리의 용이 모여 있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볼 수 있다.
전국에 ‘구룡산’이나 ‘구룡봉’이라는 산 이름이 많은데 대부분 이와 같은 유래설이 결부되어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간 산’, ‘아홉 마리의 용이 구슬을 다투는 형국의 산’, ‘용이 승천한 산’, ‘구렁이가 하늘로 올라간 산’ 등으로 조금씩 차이는 있다.

전국에 있는 ‘구룡산’(九龍山), 네이버지도
전국에 있는 ‘구룡산’(九龍山), 네이버지도

청주 ‘구룡산’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구룡’(九龍)이 들어가는 지명이나 상호명들은 매우 흔하다.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한 바다 ‘구룡포’(九龍浦),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수심 13m 깊이의 ‘구룡연’(九龍淵), 아홉 마리 용이 승천 할 때 뚫어진 굴이 아홉 개가 있어 ‘구룡소’(九龍沼). 그리고 이 외에도 ‘구룡계곡’, ‘구룡폭포’, ‘구룡령’, ‘구룡마을’, ‘구룡농원’, ‘구룡역’ 등 다양한 곳에서 지명과 상호들로 사용되는 ‘구룡’(九龍)들이 있다.

왜 이렇게 ‘구룡’(九龍)이 많은 것일까? 물론 앞에서 설명했듯이 지형이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형국”처럼 길게 이어진 모습이 많아서 그렇게 이름이 생겼을 수도 있다. 다른 이유로는 불교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오랜 시간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 현재도 많이 남아 있다. ‘산’(山)을 예로 들자면 사천왕에서 ‘천왕봉’(天王峯), 관음보살에서 ‘관음봉’(觀音峯), 비로자나불에서 ‘비로봉’(毗盧峯) 등이 있다.

‘구룡’(九龍) 역시 불교와 연관이 있다. 음력 4월 8일 ‘부처님 오신 날’이 되면 아기 부처님 머리에 물을 뿌리며 목욕시켜 드리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를 관욕의식(灌浴儀式)이라고 한다. 이는 구룡토수(九龍吐水) 이야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보요경(普曜經)』에 따르면 아기 부처님이 태어나셨을 때 “제석천과 범천이 홀연히 내려와 여러 향수로 목욕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불교에선 위 이야기 보다 “아홉 마리 용이 입에서 물을 뿜어 목욕시켰다”는 구룡토수(九龍吐水) 이야기가 더 잘 알려져 있다.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구룡토수’(九龍吐水) 벽화
사찰에서 볼 수 있는 ‘구룡토수’(九龍吐水) 벽화

즉 ‘구룡산’(九龍山)이라는 이름은 불교의 구룡토수(九龍吐水)와 연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전국적으로 ‘구룡산’(九龍山), ‘구룡사’(九龍寺), ‘구룡암’(九龍庵) 등 불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이름들도 많다.

 

 ‘구룡산’ 주변 산남동과 성화동에 있는 ‘구룡’(九龍) 지명과 상호들
‘구룡산’ 주변 산남동과 성화동에 있는 ‘구룡’(九龍) 지명과 상호들

현재 ‘구룡산’ 인근 산남동과 성화동에는 ‘구룡터널’을 비롯해 ‘구룡산 휴먼시아’, ‘구룡마을 경로당’, ‘구룡빌’, ‘구룡감자탕’, ‘구룡각’ 등 이름과 상호에 ‘구룡’(九龍)이 들어가는 곳들이 꽤 있다.

가끔 ‘구룡산’(九龍山)을 오르내리거나, 길게 이어진 ‘구룡산로’(九龍山路)를 지나다닐 때면 ‘아홉 마리 용이 승천하는 모습’과 ‘구룡토수’(九龍吐水) 이야기가 떠오른다.

 

신제인 소장(생태교육연구소 '터')
신제인 소장(생태교육연구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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