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연(文然)의 고사성어 48
용의 머리와 뱀의 꼬리. 처음은 왕성하나 끝이 부진한 현상. 송(宋)나라 때 원오선사(圓悟禪師)가 완성한, 선승들의 대표적인 선문답이 수록된 불서인 『벽암록(碧巖錄)』에 나온다.
상상의 동물 중 가장 으뜸인 용은, 서양에선 악과 이교(異敎)를 상징해 퇴치의 대상이지만 동양에선 신성시된다. 용의 머리는 낙타(駝), 뿔은 사슴(鹿), 눈은 토끼(兎)를 닮은 등 모두 9가지 동물들과 비슷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고 그려진다. 큰 눈과 긴 수염을 가지고 불이나 독을 내 뿜으면 혼비백산하지 않을 동물이 없다. 이런 용의 무서운 머리가 뱀의 가느다란 꼬리로 변한다는 비유는, 아주 거창하게 떠들고 나왔지만, 결말이 초라하게 되는 일의 따끔한 질책이다. 말만 앞세우고 결과가 따르지 못할 때 이 말을 많이 써서 담당자를 주눅 들게 한다.
용흥사(龍興寺)란 절에 이름난 진존숙(陳尊宿)이란 스님이 있었는데, 그는 부처님께 기도가 끝나면 짚신을 만들어 길가의 나뭇가지에 걸어 두곤 한다. 먼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짚신이 낡아서 아픈 발을 편안하게 해 주려는 것이었다. 또 한 학인이 와서 질문하면 바로바로 답해주는 훌륭한 스님이었다.
한 젊은 승려가 찾아와 말을 주고받는데 갑자기 스님께 ‘할!’하고 고함을 친다. (“할 ! 은 참선하는 사람을 인도할 때 질타하는 일종의 고함소리” )
진존숙이 깜짝 놀라 ‘내 그대에게 한번 당했군’하자 기고만장해져 다시 ‘할!’하고 소리친다. 진존숙은 속으로 ‘젊은 승려가 제법 도를 닦은 것 처럼 보이지만 깨치지는 못한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가 아닐까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대는 위세는 좋은데 이번에도 할! 하고 나면 다음 마무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하고 꾸짖으니 속셈을 드러낸 승려는 우물쭈물 아무 말도 못 하고 꼬리를 내렸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그 끝은 창대하리라’라는 말처럼 작지만, 충분히 검토하고 계획하는 습관이 바람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