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연(文然)의 고사성어 - 50

금의야행,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다’는 뜻으로,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 보람 없는 일을 함’, 또는 고생하고서도 보람을 찾지 못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사기(史記)》의 〈항우본기〉와 《한서(漢書)》의 〈항적(項籍)전〉에 나온다. 

천하를  처음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각지에서  호걸들이  난립할  때 명문  출신의  막강한  항우와  시골  읍장을 지낸 유방이 최후까지  겨루었다.

관중(關中)을 먼저 차지한 유방은 항우가 대군으로 포위하자 후일을 기약하며 철수하고 말았다. 홍문연(鴻門宴)의 잔치에서 모처럼 유방을 죽일 기회를 놓친 항우는 궁으로 들어가 진왕의 아들 영(嬰)을 살해했다. 민심을 다스린 유방에 비해 항우는 궁전의 금품을 약탈하고 호화궁전인 아방궁(阿房宮)을 불태웠다. 사흘 동안 타오르는 아방궁을 술 취한 낯으로 바라보며 손에 넣은 미인들과 향연을 벌였다. 이제 천하를 손에 쥐었다고 생각한 항우는 금은보화와 미녀들을 거두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다. 항우의 머릿속에는 한시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성공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한생(韓生)이라는 자가 말했다. ‘이곳 관중은 산으로 막힌 데다 지세가 견고합니다. 토지 또한 비옥하므로 이곳에 도읍으로 삼고 천하를 호령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항우의 생각은 달랐다. ‘부귀를 얻고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錦衣夜行)과 다름없는 일, 어느 누가 나를 알아줄 것인가‘ 라고 했다. 한생은 그 자리를 물러나 코웃음을 치며, 원숭이에 관을 씌워 놓은 목후이관(沐猴而冠)과 같다고  중얼거렸다가  후에  가마솥에 삶겨 죽임을 당했다. 능력은 있으나 속이 좁은 항우는 천하보다 고향에서 더 자랑하고 싶었던 것이다.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더라도 중앙에서 출세를 한 뒤 고향에 뜻깊은 일을 하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지역의 대표자로 고향을 위해 일하겠다고 모두에게 공언하고 선출된 후에는 언제 봤냐는 위인들이다. 빈 공약을 예사로하는 이런 사람을 뽑아주는 유권자도 문제인 것 같다.

/문연 이화수(남이황금길소식 기자, 전 장신대학교 자연치유 대학원 교수)
/문연 이화수(남이황금길소식 기자, 전 장신대학교 자연치유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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