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일리치(1978), 허택 옮김(2014, 2022), 느린걸음

 

인간은 나약한 존재인데 역설적으로 그 연약함이 필요에 의해 새롭게 진화되고 발전되어 지구상에 최강자가 되었다. 연약한 피부를 확장한 의복과 오관을 확장한 각종 도구들(안경, 망원경, 현미경, 보청기, 마이크, 각종  연장, 자동차 등)의 발명, 대규모 집단의 필요를 충족시켰던 산업화시대의 대량생산과 전문화 등이 이루어졌다. 

개인적으로도 배움도 있고 경제적 독립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정작 학교의 문을 나오고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소비만 할 줄 아는 자신을 발견했다. 매일 먹는 먹거리의 생산은 할 수도 없고 매일 입는 옷도 재료부터 만들어지는 과정 그 어느 과정도 참여해 본 적이 없다. 날마다 사는 다양한 집들도 남이 지어 준 것을 이리저리 평가하면서 사용할 줄만 알았지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 어느 것도 내가 할 수 있었거나 한 적이 없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완전 비렁뱅이, 기생충이다. 오래된 미래의 책 속에서 소개된 마을이 생각난다. 오지의 시골 마을이 개발되면서 자급자족하는 부락 사람들은 가난한 집단으로 추락하고 대량 생산된 공업품을 구입하기 위해 도시 노동자로 몰려간다.

또한  분업화  전문화의  극치로  자격증  소지자만이  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이  나를  쓸모없게  만든다. 개인적 필요에  의해  할 수 있는  것들조차  자격증  없이  해결하면 불법이 된다. 마음대로 집짓는 것도 불법이고 화재예방 활동, 전기배선  등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자율주행차 시대가 도래하면 인간이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데도 인간이 운전하면 불법이 될 수도, 생각하는 것과 판단하는 것도  AI가 하는  것이  더 좋고  인간이  하면  미덥지  못한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자신이 바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할 수 있었던  기능들은 레저나 취미로 살아남을 것이다. 자동차 시대에 말을 타는 것은 승마라는 스포츠로, 자율주행차 시대에는 자동차 경주라는 스포츠만 남을지도 모르겠다. 

한때 의식주 전과정을 체험할 수 있는 교육 장소와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칭  의식주  학교를 세우자고 했다. 중간과정을 모르고 리모컨과 원터치로 결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전과정을 소규모라도 체험하여 스스로 계획하고 그 과정을 집행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색다를 것이라 생각하였다. 씨를 뿌리고 자라나는 과정을 관찰하고, 그 열매로 음식을 만들고, 염색하고, 옷을 만들어 의식을 해결할 수 있는 생활, 통나무집, 흙집, 벽돌집 등 다양한 재료로 풍광과 채광, 온도를 조절하는 쾌적한 집에 대해 다양한 경험을 하고 싶다. 어찌보면 자연인처럼 생활하는 모습이라 시대를 거꾸로 사는 방식이 될 수도 있어서 평생할 수는 없지 않을까 싶다. 철기시대에도 청동기와 석기가 함께 공존하듯 가능은 하지만 체험으로만 존재할 수 있고 생활은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가 많아지면 천천히 달릴 수밖에 없다. 책의 저자처럼 산업시대 생산 양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필요하지만 인간의 창의적 문제 해결력에도 기대가 된다. 날 수 있는 것을 고안하여 자가용 비행기, 드론 등으로 문제들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아직은 지구의 종말이 오기까지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전문가)에게 의존하고 싶다.

저자와 다른 의견을 제시했는데 시스템의 문제일런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를 쓸모없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님 누구인지요?

구윤모 산남중학교 교장
구윤모 산남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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