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더스 헉슬리 저,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1932년대에 발표된 ‘멋진 신세계’와 1949년에 발표된 ‘1984년’은 모두 우리의 암울한 미래를 묘사하고 있으나 그 방식은 사뭇 다르다. ‘1984년’의 빅브라더는 사상을 통제하기 위하여 송수신이 가능한 텔레스크린을 거리는 물론, 개인의 거실, 화장실, 야외에도 설치하여 사생활과 얼굴 표정까지 감시하고, 부부 사이의 쾌락으로서의 섹스를 금지하는 반면, 멋진 신세계에서는 사람들의 자발적이고 즐거운 복종을 유도한다.

멋진 신세계는 ‘공유·균등·안정’을 모토로 여성의 출산이 아니라 인공시험관으로 인간을 생산하므로, 부모, 부부, 자식으로서 겪는 감정이나 갈등이 없다. 인간은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으로 구분된 피라미드 형태의 구조를 띠며, 아래로 갈수록 뇌와 키가 작아지고, 계급마다 다른 색깔의 옷을 입는다. 각 계급의 인간은 필요에 따라 필요한 만큼 생산되고, 사회 안정을 위하여 단순 노동에 종사하는 감마, 델타, 엡실론 계급은 하나의 수정체를 100여개로 분할하여 생산된 일란성 쌍둥이들을 동일한 공장 등에 배치하여 균등하게 대우한다.

인간은 만인의 공유이므로 일부일처는 생각할 수 없고 극단적인 자유연애가 요구되며, 어려서부터 지속적으로 성애를 학습한다. 사회의 안정을 위하여 모든 인간들은 인공수정부터 성장할 때까지 조건반사 교육을 받아서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선을 넘어 생각할 능력도 없으며, 계급에 따라 균등하게 대우받는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은 안정되어 있으며 질병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고통이나 욕망, 사랑, 격정이나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끼지 않고, 쾌락의 충족을 위하여 성호르몬이 함유된 껌과 전자골프 등 많은 오락이 제공되므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다. 혹시 약간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소마라는 약을 조금만 복용하면 다시 행복한 생활이 가능하다. 다만, 모든 것을 이해하는 뛰어난 총통이 홀로 깨어 질서정연한 사회 운영의 방향을 정할 뿐이다.

소설은 시스템 실수로 감마 계급 정도로 작게 태어난 버나드가 열등감으로 고민하고, 구세계에서 어머니의 출산으로 태어나 멋진 신세계를 동경하던 야만인 존이 구세계의 시선으로 멋진 신세계를 보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존은 신세계 사람들이 종교 감정이나 예술, 고민이나 선택의 여지없이 주어진 환경에 만족하고, 감정의 기복 없이 쾌락만 추구하는 노예 같은 삶을 사는 것에 절망을 느껴 자살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안정된 사회, 구성원들 대부분의 쾌락과 행복이 충족된다는 관점에서 멋진 신세계를 이상향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나, 많은 사람들은 이 소설이 천국을 묘사한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멋진 신세계’와 ‘1984년’을 비교한 글 중 닐 포스트먼 교수가 1985년 ‘죽도록 즐기기’라는 책의 서문에 쓴 글을 소개한다. 위 책은 미국 사람들이 텔레비전이라는 매체에 빠져 공적 생활이 오락으로 변질되고, 사람들이 넘치는 정보 속에서 생각할 능력을 상실해 간다면서 아래와 같이 비교하였다.

오웰은 우리가 외부의 압제에 지배당할 것을 경고했다. 하지만 헉슬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압제를 환영하고 자신들의 사고력을 무력화하는 테크놀러지를 떠받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웰은 누군가 서적을 금지시킬까 두려워했다. 헉슬리는 굳이 서적을 금지할 만한 이유가 없어질까 두려워했다. 오웰은 정보통제 상황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지나친 정보과잉으로 인해 우리가 수동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할까 두려워했다. 오웰은 진실이 은폐될 것을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비현실적 상황에 진실이 압도당할 것을 두려워했다. 오웰은 통제로 인해 문화가 감옥이 될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들이 가상현실 영화와 같은 것들에 몰두하느라 하찮은 문화로 전락할까 두려워했다. 자유주의 시민들과 합리주의자들은 전제정치에 대항하는 경계태세는 늘 빈틈없이 살피면서도, 인간들의 거의 무한정한 오락추구 욕구는 미처 살피지 못했다. ‘1984년’에서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해 통제하지만 ‘멋진 신세계’에서는 즐길거리를 쏟아부어 사람들을 통제한다. 오웰은 우리가 증오하는 것들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두려워했지만, 헉슬리는 우리가 좋아서 집착하는 것이 우리를 파멸시킬까 두려워했다.

지금은 닐 포스트먼이 분석한 텔레비전보다 정보와 오락이 무한대로 제공되는 인터넷, 인공지능 시대이다. 고난없이 얻는 것은 없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우리가 넘치는 정보 속에서 오히려 진실에 눈 감는 것은 아닌지, 고난 없이 성취한 쾌락과 행복에 안주하여 생각할 능력과 판단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때다.

 

최석진 변호사(최석진법률사무소)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