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클라라의 그리스 이야기

지난 호에 그리스 12신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해보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리스 철학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등 학교에서 배웠던 그리스 철학자들의 이론과 주장들은 자세히 몰라도 그들의 이름은 많이 들었던 터라 생소하지는 않지요. 그리고 그들의 유적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기대되고 흥미로웠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BC7~6세기에서 아테네의 신플라톤 학파의 학교가 폐쇄된 6세기 초까지 약 천 년 간에 걸칩니다. 철학의 어원은 ‘지혜를 사랑하다’라는 뜻으로 그 당시에 이미 철학사의 근본적인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립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또 변증법적 및 형이상학적 인식과 그 밖에 주요 철학적 문제들이 논의되었습니다.


그리스 철학의 출발은 ‘만물의 근원은 무엇이며 근본 물질은 무엇인가’로 출발하여 자연 철학 이라고 불립니다. 그중 동방 이오니아 지역인 밀레토스의 탈레스를 중심으로 하는 밀레토스학파의 철학자들이 최초의 철학자들입니다. 밀레투스와 변증법 사상을 표현한 에페소스는 지금은 튀르키예 땅이기에 다음으로 미룹니다.


리케이온
그리스 철학의 절정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속했던 시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는 철학도를 위한 학교와 학파가 4개 있었습니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Academia ▲제논의 스토아Stoa ▲에피로쿠스의 케포Kepos ▲아리스토텔레스의 페리파토스Peripatos.

이 네 곳 중 제일 잘 보존이 되어 있는 페리파토스가 있는 ‘리케이온(Lykeion)’을 가보았습니다. 아크로폴리스와 고대 아고라, 하드리아누스 도서관을 포함한 7곳을 볼 수 있는 30유로 짜리 표로 입장이 가능했다.

리케이온은 ‘아리스토텔레스 학당(Aristoteles School)’으로 그 뜻은 ‘늑대의 신 아폴론’으로 원래 아테네 근교의 체육관 김나시온(Gymnasion) 옆에 있었던 ‘아폴론 리케이오스(Apollon Lykeios)’에게 바친 숲 속에 있던 공공장소로, 그 안에는 아폴론 신상을 모신 신전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근처에 학교가 세워지면서 이 역시 리케이온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96년 건물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으며 현재 위치는 아크로폴리스 동쪽에 있는 키클라데스 예술박물관 근처에 있습니다.

리케이노_아리스토텔레스 학당
리케이노_아리스토텔레스 학당

 

여기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BC334년부터 12년 동안 열주(列柱)로 만들어진 기다란 홀인 ‘Peripatos페리파토스’에서 거닐면서 강의를 했기 때문에 그를 따랐던 제자들을 총칭하여 ‘소요학파’라고 불렀습니다.

                      앗소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동상
                      앗소스의 아리스토텔레스 동상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강의 뿐 아니라 방대한 양의 장서를 갖춘 도서관과 광범위한 교구가 모여있는 자료실을 운영했다고 합니다. BC86년에 로마의 장군인 술라가 아테네를 약탈할 때까지 존속하였습니다.

현재 리케이온에는 페리파토스 기단 일부만 남고 거의 폐허가 되었지만 넓은 터에 공원처럼 가꾸어진 이곳을 산책하며 철학 이야기를 상상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감옥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

민주주의의 시작인 프닉스 언덕 근처 필로파푸스 기념탑으로 오르는 길에 소크라테스 감옥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직접적으로 어떤 저술이나 일기를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 혹은 지인들, 대표적으로 플라톤과 크세노폰, 비극적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 등이 남긴 저술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의 삶과 사상을 짐작할 뿐 자세한 파악은 힘듭니다. 바로 이러한 ‘소크라테스는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으며, 실제로 어떤 생각을 했는가’라는 문제를 두고 학계에서는 ‘소크라테스 문제’라고 부릅니다. 문답법을 통한 깨달음, 무지에 대한 자각, 덕과 앎의 일치를 중시했던 소크라테스는 말년에 아테네의 정치 문제에 연루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지만, 당대의 젊은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철학자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암벽을 깍아 만든 동굴로 된 감옥으로 소크라테스는 죽기 직전까지도 제자들과 철학적 논의를 펼쳤다고 합니다.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서 보는 석양이 참 아름답다고 느낀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소크라테스 동굴감옥
소크라테스 동굴감옥

그는 외모 지상주의 풍조가 있던 당시 아테네에서 신발도 없이 누더기 옷을 걸치고 석공 출신의 튼튼한 몸으로 초연한 풍모를 과시하고 다니며, 술고래이면서도 말짱한 정신으로 사색과 토론을 하는 강철 멘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테네의 변명>과 <소크라테스의 재판>이라는 책에서 그의 삶과 당시의 세계관이 잘 드러나 있다.

‘젊은이여, 결혼하라. 좋은 처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악처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것이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안다.’
등등의 말들을 남겼습니다.

 

뉴스에 날 뻔한 에피소드
사실 우리가 아테네 지하철역 오르는 에스컬레이터 계단에서 사고를 겪었다. 일행 중 한 명이 큰 여행 가방을 에스컬레이터에 잘못 올려 놓는 바람에 그 가방이 본인 몸을 덮쳤고, 그 뒤에 있던 일행한테 연쇄적으로 전달되어 여섯 중 네 명이 가방과 몸이 서로 엉키어 깔리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제일 젊은 스무 살의 아폴론이 맨 뒤에 있었던 것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야무진 몸이 아니었으면 더 큰 사고가 될 뻔하였다.

우리의 비명소리와 상황을 보고 주위에 있던 모든 분들이 사람과 가방들을 잽싸게 빼내 주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더구나 10.29참사를 겪은 지 얼마 안 되어 출국한 우리로서는, 압사라는 끔찍한 트라우마를 간접 체험하였기에 그 당황스러움과 공포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주 강렬한 고통을 갖게 했다.

지하철역 근무자들이 소식을 듣고 올라와서 병원으로 가자고 요청했지만, 일단 우리는 땅바닥에 한참을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켜가며 다친 곳은 없는지 살피고 천천히 일어나 걸을 수는 있는지 멍든 곳은 없는지 서로 살피고 괜찮다고 답을 주었다. 몇 번이고 정말 ‘Are you OK?’ 하고 확인을 받고 그들은 내려갔다. 멀리 아테네까지 와서 뉴스에 날 뻔 하다니 ~ 하느님이 보우하사 ~

 

※ 클라라의 여행 꿀팁
유럽 지하철역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 반드시 가방을 먼저 바퀴가 반듯하게 올라갔는지 확인하고 바로 올라탄다. 가방이 미끄러지더라도 몸으로 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람이 먼저 타고 가방을 뒤로 끄는 것은 혹시 가방을 놓치게 되면 뒷사람에게 자칫 위험할 수 있다. 일행끼리 너무 바짝 서지 않도록 여유 있게 선다. 사고를 대비하여 청심환 정도는 상비약으로 챙긴다. <다음 호에는 마라톤과 고대 도시 코린토스와 운하 이야기입니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