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 산남교회)
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 산남교회)

 


내가 아는 충남 예산의 한 동네가 있다. 예산이라는 동네는 예로부터 충청도의 예향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었는데 지금은 지방개발의 중심지가 주변의 아산과 홍성으로 가는 바람에 소읍도시로 밀려난 도시이다. 퇴락한 도시에서 그 지방의 전통적 자부심을 유지시키는 것은 참으로 힘들지만 젊은 목회자와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하나의 문화적 단지를 형성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공동체와 문화의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새 우리는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시장기능으로써의 대형마트, 관공서와 병원등이 갖추어진 신도시를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 좋은 조건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곳 청주 산남동만 하더라도 옛날 같으면 아주 벽지였던 곳에 이렇게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 청주시 성안길을 중심으로 한 구도심 활성화라는 문제도 그곳을 새로운 도시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곳의 문화적 활성화를 통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과제일 것이다.

이런 문화적 공동체의 과제가 비단 구도심의 활성화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곳 산남동, 소위 신흥법조타운이라고 할 수 있는 우리 동네도 역시 이제 새로운 문화적 활성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동네는 다행히 두꺼비생태공원이라고 하는 생태적인 우수성을 강점으로 하여 마을공동체가 활성화되어 있는 동네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의 문제에 있어서도 우리동네가 앞장선 동네일까? 꼭 우리 동네가 문화적으로 가장 앞선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얼마만큼 문화적인가 하는 문제로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일년 동안 두꺼비마을신문의 이 지면을 통해 두꺼비생태공동체가 추구해야할 여러 가지 방향에 대해서 나의 견해를 조금이나마 피력해 보았다. ‘마을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시작한 이 칼럼은 이제 문화적 주제로 옮겨가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산남동 마을 공동체의 문화적 주제는 다양하게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기후 생태위기의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이것을 문화적 다양성과 연결하여 활동할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것도 최종적으로 문화적인 문제와 결합되어야 할 것이다. 사회복지는 문화적 빈곤의 문제를 도외시해서는 우리시대 가난문제의 핵심을 건들지도 못할 것이다. 우리가 사는 마을 공동체의 여러 구성원들이 모두 하나의 공기를 마시며 사는 것처럼 문화는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삶의 환경이 될 것이다.
우리가 사는 공동체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하나의 획일화된 질서로 만족하며 사는 전체주의적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부유한 동네는 이러한 획일성을 강요하고 있다. 또 가난한 동네도 그곳에 문화적 다양성을 보급하지 못하고 말 때, 거기에서도 획일화된 문화적 전체주의가 지배하는 음울한 동네가 될 것이다. 획일화된 문화는 우리의 삶을 음울하게 한다. 그러나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삶의 다채로운 측면이 우리 주변을 조성하게 될 때 우리는 문화적으로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지게 된다. 우리 삶의 의미가 보다 상징적이고 신비적인 내면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것들이 서로 얽혀 하나의 의미의 망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여성이든 남성이든, 젊은이이든 늙인이든 모두가 자신의 삶의 자부심을 가지되, 서로 얽혀있는 삶에 의미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나이에 맞는 방식대로 마음 껏 표현할 수 있어야 노인들도 그러한 활력을 얻고 활기찬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산남동에서 이렇게 다양한 각계각층의 문화적 표출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함께 엮이어 우리만의 문화적 잠재성을 키워나가는 문화적 활성화를 기대해 본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