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균 신부(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마을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그곳에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기가 가능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마을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아가는데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마을이다. 지금 우리마을은 다양한 사람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을 가지고 우리 마을을 살펴보자면 무언가 빠져있는 그 사람들을 그려내는 상상력이 필요해진다. 사람의 다양성을 따지자면 먼저 나이의 다양성을 들 수 있다. 갓 태어난 아이부터 100세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것은 그 마을에서 나고 자라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 마을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던 전통적 마을에서 벗어나 탈농촌, 탈마을(향촌)과 함께 근대적 도시화가 진행되어 현재는 도시 안의 새로운 도시화라는 현상에까지 이르고 있다.  

현대의 도시는 세대간의 단절이 문화적으로 고착화되어 결국 마을이라는 전세대적 삶의 공동체가 아니라 분절된 문화적 단자화로 변해가고 있다. 분명히 하나의 거대 도시 안에 다양한 세대가 존재하면서도 그세대들의 문화는 분절되어 서로간에 소외되고 소통이 없어지고 격리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하나의 마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소외되고 격리된 각 세대간 다양성이 다양한 공간에서 회복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세대의 숲이라고 명명하고 싶다.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 숲이라면 지금 우리는 단일한 종류의 나무끼리 조성된 인공 숲에서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오래된 나무 옆에 다른 종류의 새로운 나무가 태어나고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이 잘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숲의 모습은 아름답고 건강해 보인다.  

우리 마을에도 노인과 청년이 친구가 되고 같이 게임을 하거나 서점에서 책을 놓고 토론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너무나 살기좋은 마을이 될 것 같다. 자전거나 전동킥보드를 타는 청년들이 노인과 장애인들이다녀야하는 인도에도 단차없이 부드러운 소재의 길이 깔리도록 캠페인을 벌이는 모습이 가장 건강한 마을의 모습이다. 정치는 이들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동네는 어떠한가? 노인들을 위한 시설만큼이나 청소년 시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전거와 전동킥보드가 달리는 인도 위에서 노약자와 장애인들이 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차도는 한사람의 혹은 소수의 빠른 이동을 위해 그렇게 크고 무거운 이동수단을 위한 시설이지만 어린이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사람들의 조깅에서부터 장애인들이 이동하는 인도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 자동차들의 이용은 최대한 억제하고 자전거나 전동킥보드 같은 소규모 자가이동수단과 장애인들의 이동에 친화된 걷기 도로는 우리가 사는 마을에 더욱 다양한 세대와 다양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용하는 대표적인 시설이다. 산남동에과거에 기획되었던 차없는 거리 축제 같은 행사가  다시 한번 시도되길 바란다.

그래서 그 축제에 어린이와 그의 젊은 부모, 그리고 조부모세대,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함께 이 동네를 이용하는 가성비 높은 마을을 그려본다. 나는 이것이 세대의 숲이라고 개념지어 보았다. 여러 세대가 함께 이용하고 함께 모이는 마을을 위한 상상을 통하여 우리 마을의 모습을 그려나가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는 마을운동이 필요하다. 교육과 돌봄의 문제도, 장애인 이동권의 문제도, 노인들에 대한 지원도 모두 다양한 세대들이 함께 어울어지는 마을을 지향하도록 했으면 좋겠다.  

대규모 이용시설을 유치한 것으로 정치인의 인기를 판가름하는 시대는 지났다. 노인복지시설과 시니어클럽과 장애인시설이 함께 모여있다면 이들을 연결시켜주고 여기에 청소년시설, 아동시설 등을 추가하여 복합적인 다세대 복지를 이룩해본다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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