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동 선생의 시 낭독회 다녀온 이야기

오원근 변호사(변호사 오원근 법률사무소)
오원근 변호사(변호사 오원근 법률사무소)

아침마다 출근해, 소리 내어, 시 읽는 재미를 꾸준히 누리고 있다. 요즘은 형석중학교 교감이신 섬동 김병기 선생의 ‘스승을 말하다’를 읽고 있다. 수행은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고 애쓰는 것이다. 섬동의 시에서는 그런 수행자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섬동(蟾童)을 우리말로 풀면 ‘두꺼비 아이’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바깥에서 찾는 게 아니라 내 본래면목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한다. 본래면목은 아직 세파에 찌들지 않은 아이에게서 더 잘 드러난다. 섬동 선생은 수많은 세파를 겪었으면서도 아이의 본래면목을 여전히 갖고 있다. 끝없는 성찰과 수행 덕분일 것이다.

섬동 선생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다 최근 술자리를 두어 번 하면서 한층 가까워졌다. 형님, 아우 사이가 되어, “말을 놓으시라” 하니, 그는 “학생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낮춤과 겸손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다.

지난 12월 6일, 서점 ‘꿈꾸는 책방’에서 섬동 선생의 시집 ‘스승을 말하다’ 시 낭독회가 열렸다. 이 낭독회는 김은숙 시인이 이끄는 ‘책방통통通通’에서 마련한 것이다. 김 시인은 오래전부터 서점, 유튜브 등에서 여러 형태로 책 모임을 주도하면서 지역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헌신하는 ‘문화보살’이다.

서른 명 넘는 분들이 오셨다. 몇몇 아는 분들이 있었고, 섬동 선생과의 인연으로 처음 오신 분들도 있었다. 두꺼비마을신문의 조현국 편집장도 함께했다. 김 시인은 책방통통, 상생충북의 취지(지역작가가 지역출판사에서 낸 책을 지역 서점에서 팔아 지역의 책 문화를 드높임)를 설명하고, 시집에 대해 “작가의 교육철학이 담긴 것 아니냐”는 말과 함께 주인공에게 인사말을 부탁했다.

섬동 선생은, 일상 대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용하고 느리지만 쉽게 흔들릴 것 같지 않은 말투로, 겸손과 부끄러움을 말했다. 그는 시집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가르침을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함께 낮은 자세로 공부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겸손하고 낮아도, 그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는 뚜렷하다. 천하무인(天下無人), 천하에 남이란 없다. 하나이기 때문에 같이 배우고, 같이 아프고, 같이 기뻐해야 한다는 뜻 아닌가 싶다.

섬동 시인이 시낭독회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현국
섬동 시인이 시낭독회 참가자들에게 인사말을 하고 있다. ⓒ조현국

낭독회의 백미는 자리를 같이 한 분들이 돌아가며 시를 읽고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다. 어느 지역의 부군수를 지낸 분이 일어나, 시를 낭독하고, 아주 뛰어난 말솜씨로 소감을 조금 길게 말했다. 잘한 것 같은데, 사회를 보는 김 시인에게서 당장 응징이 들어왔다. “이렇게 길게 하시면 안 됩니다. 주어진 시간에 되도록 많은 분이 참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때로는 사회자가 이렇게 냉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자타공아自他共我”라는 시를 낭독했다. 내가 시골에서 직접 농사를 짓거나 산에서 얻어와 먹거리를 자급자족하고 있다고 뽐내는 것에 대해, 한 말씀 해주신 시다. 나를 내려놓는 공부는 끝이 없다.

“…(전략)… 자급자족이라고 하는 마음이 아름다운 밥 모심이라고 여기니 부드러운 웃음이 먼저 넘어가는데, 내가 베푼다는 자급에서 머뭇거린다. 낱생명도 온 우주의 힘으로 자란다는 말에서 걸린다. 그들의 목숨도 내 목숨으로 바로 보면 낮은 고마움이 더 크겠다 싶어, 타급자족他給自足이라 고쳐서 잎글을 보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을 거스르는 흐름이 있고 함부로덤부로 잣대질을 한 거 같아 자타공아自他共我라고 이름하여 품고 다닌다. 나와 남이 함께 ‘나’라고 여기니 온 생명의 덕분 누리가 보여 좋았다. …(후략)…”
— <자타공아 自他共我> 중에서

섬동 선생이나 사회를 보는 김 시인, 또 이날 참석한 모든 이를 위해 스스로 다과와 꽃을 준비해 온 분들이 천하무인, 자타공아의 참뜻을 실천하고 있는 것일 게다.

오원근 변호사와 참가자들이 섬동 시인의 '스승을 말하다'에 수록되어 있는 시를 낭독하고 있다. ⓒ조현국
오원근 변호사와 참가자들이 섬동 시인의 '스승을 말하다'에 수록되어 있는 시를 낭독하고 있다. ⓒ조현국

김 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뒤에 앉은 분들에게까지 가 일일이 낭독을 권하셨다. 그렇게 하여 일어난 분들은, 당장은 당황스러워했지만, 전혀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것이라 훨씬 더 자연스러워 보기 좋았다. 김 시인의 능수능란한 사회가 좌중을 휘어잡았다. 어떻게라도 낭독을 하고 가신 분들은 뿌듯했을 것이다. 어떤 분은 이날 낭독회에 대해 페이스북에 “오늘날,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현장에 저도 함께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낍니다”라고 썼다. 그날 내린 첫눈처럼, 문화의 정서가 아름답게 쌓인 모임이었다.
섬동 선생도 페이스북에 이렇게 소감을 남겼다.

“낭독회에선/ 내가 읽히고 있고/ 나를 읽고 있었다/ 내가 한 생각과 글과 삶이/ 굽은 소나무처럼 눈을 털며 울고/ 내가 드린 회초리처럼 날종아리를 친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행복이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