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는 듯한 더위도 절기를 이겨 내지는 못하는지 선선한 바람으로 바뀌었다. 올해 추석은 예년보다 조금 빠른 느낌이 든다. 지금은 뭐든 여유로워 명절을 따로 기다리는 것이 무색하지만 내가 어려서는 명절이 되면 추석빔을 새로 얻어 입는 것이 너무 좋았다. 추석에 새 옷을 입고 읍내에서 열리는 노래자랑과 사물놀이 구경 가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내가 어릴 때 명절이 다가오면 며칠 전부터 어머니는 무척 바빠지셨다. 읍내 방앗간에 가서 기름도 짜고 쌀가루도 미리 빻아다 놓고 준비를 하셨다.

우리 어머니는 추석 명절에는 꼭 술떡(증편)을 만드셨다. 쌀가루에 막걸리를 넣고 발효를 시킨 반죽에 붉은 맨드라미 꽃을 중간중간 꽂아주고 검정깨, 가늘게 쓴 밤을 솔솔 뿌려 주면 맛도 좋지만 보기에도 예쁜 증편이 된다. 막 쪄낸 증편에 아직도 시큼한 냄새가 난다. 요즘은 서로 바빠서 명절이 다가와도 둘러앉아 송편을 빚는 가정이 흔하지 않지만, 예전에는 명절 전날은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송편을 밤이 늦어질 때까지 빚었다.

앞줄 - 왼쪽부터 오태리 김다은 안세아 육민서 채수현 뒷줄-성지후 에이든 김동윤 김정후 조예서
앞줄 - 왼쪽부터 오태리 김다은 안세아 육민서 채수현 뒷줄-성지후 에이든 김동윤 김정후 조예서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데리고 송편을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올해는 특별히 전통적인 놀이 활동을 해보려고 준비를 했다. 얼마 전 새로 들어온 사라는 엄마가 일본사람이다. 아일랜드 출신인 아빠를 둔 에이든, 베트남 엄마를둔 정후, 이렇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진 부모에게서 자라는 아이들이 처음 맞이하는 추석에 특별한 기억을 남겨 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고사리 손으로 반죽을 조물닥거려서 송편을 만들었다. 공룡을 만든 친구들도 있고 어떤 친구는 우주선이라고 제각각의 모양의 송편을 만들었다. 송편 만들기보다 송편 속에 넣을 고물 먹기에 바쁘다.

이번 추석에 특별히 우리 어린이집에서는 조부모님과 함께하는 행사를 계획했다. 어린이집 행사에는 주로 부모님들의 참여가 많지만, 조부모님들도 손주가 노는 모습이 얼마나 궁금하실까 해서 조부모님과 함께 하는 행사를 계획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시환이 할머니가 아이들에게 예절 교육을 해주셨다. 알록달록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아이들과 윷놀이, 투호 던지기, 제기차기도 함께 하며 풍성한 한가위를 미리 마중하고 왔다. 아이들은 할머니께 배운 절을 하고 할머니들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할머니와 더욱 친밀해질 수 있는 시간이 된 것 같다. 우리 어린이집은 어린이와 노인을 이어 주고 서로 다른 나라의 문화를 가진 학부모에게 좋은 한국 문화 속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지속해서 할 생각이다.

최미경(산남계룡 리슈빌 어린이집 원장)
최미경(산남계룡 리슈빌 어린이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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