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블리스 오블리주는 ‘귀족은 의무를 진다’라는 뜻으로 사회 지도층 혹은 상류층이 직위에 걸맞는 모범적 행위를 이르는 프랑스어 표현이다. 우리나라처럼 신분사회가 아닌 나라에서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사회를 위해 선행을 했을 경우 사용된다. 정작 어원을 가진 나라에서는 쓰지 않는다.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는 어려운 농가를 위해 농작물이나 특산품을 소개해 판매를 촉진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대기업 몇 곳이 사회공헌 활동에 참여하게 되는데 수백톤 단위의 농작물 유통을 맡거나 소위 통큰 매입을 결정하기도 한다. 대기업다운 선행, 그리고 그 선행으로 기대할 수 있는 긍정적인 사회의 변화까지, 우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주라는 말을 실감하며 예전보다 더 나은 곳에 살고 있다고 느낀다.
기업의 사회공헌은 거의 기본소양 차원에서 요구받고 있으며 한국처럼 대기업이 많은 나라에서는 그러한 인식이 더 큰 편이다. 기업이 내는 세금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법인세는 OECD 가입국 중심으로 핀란드 2.6%, 프랑스 2.1%, 이탈리아 2.9%에 반해 한국은 4.5%로 가장 높다. 하지만 기업이 내는 세금은 법인세만 있는 게 아니다. 산재보험료, 건강 보험료 기업부담금, 한국엔 없는 급여세까지 세금 평균을 비교해 보면 핀란드 10.2%, 프랑스 13.3%, 이탈리아 10.7%, 한국이 7.8%로 가장 낮다. OECD 평균은 8.9%다.
한국은 직접세, 간접세를 막론하고 세금이 적다. 실제 한국 조세부담률(소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약 25%)에 못 미친다. 세금을 덜 내는 대신 돈을 어디에 쓸까? 한국은 OECD 가입국중 1등인 지표 중 하나가 민영보험료라고 한다. 무려 11.8% 로 다른 선진국들을 압도한다. 세금의 규모가 작다보니 국가는 복지에 지출을 해야 하는데 복지 지출에 인색하다는 인식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복지국가에서 세금이 상징하는 것은 연대의 비용이다. 부자든 적게 버는 사람이든 사회의 문제와 발전을 추구하는 비용에 공동으로 부담하는 것이다. 상위 1%에게 걷어서 저소득층을 위해 쓰자는 것은 연대도, 복지도 아니다. 똑같이 힘든 나도 세금을 부담하면서 더 힘든 사람에게, 심지어 나에게 돌아오는 권리로서 작동할 때 복지국가라는 걸 실감할수 있을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어찌 보면 사회에 독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부자가 베푸는 것, 상위 몇 %의 결정에 의해 ‘기부’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신분제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김학철 팀장(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
김학철 팀장(혜원장애인종합복지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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