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진 이들로 말미암아 나라가 밝아진다’ 는 뜻이다. 『서경·4편-주서10장』에 나오는 성어로 ‘자기를 이룸’(成己)이 ‘어짊’이고, ‘사물을 이룸’(成物)이 ‘앎’이다. 이러한 성기(成己)와 성물(成物)을 일러 목숨이 바라는 바의 ‘덕(德)’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의 뜻인 목숨을 올바로 누리기 위해서는 인지(仁知)를 아울러 간직해야 한다. ‘어짊’만 고집해서도 안 되고 ‘앎’만 고집해서도 안된다는 말이다.
지식에만 치우쳐 기울어진다면 사람이 지식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바로 지금의 우리가 그렇게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닐 까. 그래서 지식만 추구하면서 덕성을 우습 게 보려고 한다. 지식을 쌓아야 경쟁력이 생긴다고 아우성이다. 이렇다 보니 덕을 숭상할 리 없고, 그 결과 현자(賢者)를 본받을 리없게 되고 말았다. 유능한 인재가 되길 바랄뿐 현명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 모양 새다. 그래서 덕을 받든다고 하면 비웃고, 현명한 사람이 되라고 해도 비아냥거린다.
덕이 없어지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덕은 만세의 터전이며 현성의 기틀이다. 기능이나 지식보다 더욱더 중요하게 여길 때삶은 풍요롭고 지혜는 빛을 더 할 것이다.

▲ 문연 이화수(남이황금길소식 기자, 전 장신대학교 자연치유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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