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짱구짱아

20년만에 장학금을 받았다.
엄마장학금이다.
20년전에는 고마운줄도 고마워할줄도 몰랐던 그 돈이 오늘은 어쩐지 눈물겹다.

자식은 늘 그렇다.
한번도 단한번도 자식에겐 망설임 없이 주는 걸 부모에겐 쉽게 주질 못한다.

부모는 늘 그랬다.
자식에겐 쉽게 내어주던 그것을 한번도 단한번도  내게는 쉽게 내주질 못한다.
 
엄마는 그림을 그리신다. 숨은 재능을 찾은 듯 엄마의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시민문화교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가끔 전시회를 열면 엄마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꼭 보러온다.  언젠가 내게 주기로 하고 그린 해바라기꽃을 거금을 내겠다며 사고싶다고 했다. 무명의 작가지만 이력이 된다며 그림을 팔아보라시는 선생님 말씀에도 우리딸이 좋은 게 더 좋다시며 망설임없이 나를 주셨다. 괜히 뺏기는 게 싫어 내가 열배 낸다며 공수표만 날리고 염치없이 그림만 받아온 딸이다.
그래도 자식을 낳아 기르는 조금은 철든 자식이라고 친구가 비싼 수강료를 내고 몇달을 배우더니 미술대회에서 큰 상을 탔다는 말에 자식 보듯 속상한 마음이 들더라.
내가 보내줄게 그래놓고도 수강료를 쾌척하지는 못했다.
돌아와 살다보니 자식 학원비가 수강비가 더 바쁘고 급했다.
 
엄마와 짧은 통화를 한다.
"수업은 재밌어? 더 바쁘지?" "엄마 강의 시작한다~" 그래그래 얼른 끊으면서 숨죽이는 목소리로 친구에게 재밌단다 그러는 엄마의 작은 목소리에 눈물이 핑 돈다.
한번도 소중한 장학금에 정말 열심히 해야겠다는 감사함을 몰랐다는 40살의 딸 짱아.
대학교정이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20년 전 그때도 여전히 예뻤을 교정의 하늘은 부끄러운 내 얼굴만큼 빨간 노을이 지고 있다.
감사함을 몰라도 당연히 모를거라 여기며 재미있게 배우면 그것으로 족한 내 엄마의 마음으로 오늘도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엄마장학금을 쾌척하는 우리들.
전생에 내 자식에게 무슨 죄를 지었던 걸까? 아님 어떤 큰 은혜를 입었던 걸까?
5살까지 평생효도를 다 한다는 말처럼 우리는 활짝 웃는 그 웃음에 녹고 예쁜짓에 빠져 평생을 아픈줄도 억울한줄도 모르고 희생을 사랑으로 포장된 희생을 씩씩하게 해내고 만다.
두둑한 현금봉투 겉봉에 낯익은 아빠글씨. '우리 큰딸 이** 대학원 학비지원' 이라고 써있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10분의 1도 아깝던 그 돈.
그 돈을 꺼내지도 써지도 못했다.
다시는 못받을 안받을 엄마장학금.
올림픽 기념주화처럼 그모습 그대로...
우리도 이젠 당신이 계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교정에 찍히는 내 발자국 하나하나가 감사함으로 찍힌다.
그때보다는 꼭 더 열심히 해서 엄마품에선 못 이루 꿈을 자식을 품은 씩씩한 엄마인 지금 꼭 이룰게요.

엄마아빠,

부모에겐 늘 해도 모자란 그 말.
고맙습니다.
 
자식에겐 늘 하는 참 흔한 그 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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