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서커스”라는 말이 있다. 고대 로마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참정권의 기회가 주어지자 이들을 회유하려는 권력가들이 경기장에서 검투사의 격투나 전차경주 등을 보여주고 빵을 뿌려주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결정에 동원하였다. 이를 두고 로마의 시인이 개탄한 시에서 나온 말이 “빵과 서커스”라는 관용어였다. 가난한 이들에게 값싼 빵으로 배불리게 하여 그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점이 핵심의미이다. 중우정치를 뒷받침하는 경제의 중요한 밑바닥에 이러한 값싼 빵정책이 있다. 로마의 빵은 이집트와 그 밖의 지중해 인근 여러 지역에서 생산된 밀의 확보에 그 공급량이 결정된다. 로마 황제는 이러한 밀을 공급할 경작지를 식민지로 확보해야 로마의 군대와 로마 시민에게 값싼 빵을 공급할 수 있었다. 로마황제의 실력 중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가 빵의 공급능력이었다.

이러한 값싼 식량 정책은 현대에도 작동되고 있다. FTA체제에서 우리 쌀은 비싼 식량이 되었다. 외국에서 들여오는 값싼 농산물 때문에 우리나라 농민들이 생산하는 쌀의 가격은 상대적으로 비싸진 것이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쌀의 소비는 줄어들고 또 직접적으로는 값싼 외국산 쌀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리는 신세가 된 것이다. 대개 1980년대 시작된 세계화의 물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그 이전까지 우리나라는 일제시대부터 유신시대 군사정권 때까지 우리는 쌀이 모자라서 걱정인 나라였고 그렇다고 쌀을 수입한다는 생각은 할 수도 없는 시대가 있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에 정부에서는 혼식을 장려하였고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도시락을 검열하는 진풍경이 일상사였던 때가 있었다. 선생님들이 매일 도시락을 점검하는 모습은 상상 만해도 ‘웃픈’ 추억이 아닐 수 없다. 나치 독일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을까?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던 이유는 나라에서 농산물 가격을 조절하고 값싸게 농산물을 공급하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전 국민을 하나의 독재적 정치체제로 동원하기 위해, 또는 준전시체제를 유지하고 자극하기 위해 로마에서 값싼 빵을 공급하듯이 쌀을 굶기지 않고 공급해야했다. 일제 시대나 자유당정권 혼란기와 한국전쟁시기는 전 국민이 기아와 싸워야만 했던 시기였다. 군사력을 통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사정권이 민주화 이외 집권하는 유일한 길은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시절 정부는 농민들이 쌀을 충분히 생산하고 그 쌀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경제체제를 유지해야만 했다. 쌀의 안정적 공급이란 다름 아닌 값싼 식량정책이다.

오늘날 빵은 값싸고 손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대중식량이 되었다. 그러나 그 값싼 빵 한 조각이 없어서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인구는 아직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 고급 빵을 먹기 위해 줄을 서서 빵을 사가는 ‘잘나가는 빵집’이 있다. 왜 현실에서 빵은 평등하지 못한가?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식량으로서의 빵은 권력의 소모품으로 또는 군중의 근시안적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되기 쉬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원시시대에서 첨단과학시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욕망에 속하는 배부름의 욕망을 채워줄 수 있는 빵은 다른 욕망 뒤에 숨겨져 있거나 가려져 있을 뿐 가장 중요한 욕망이 채워져야 문명이 발달해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풍성한 물질문명이 이룩된 뒤에 빵은 정체성이 사라지고 서커스로 대표되는 오락과 게임의 부속물로 전락하게 된다. 그 때 빵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주 메뉴의 사이드 디쉬에 담겨오는 부속물이 되거나 사치와 향락을 대표하는 디저트로 극단화된 분열을 겪는다.

선진국일수록 일인당 쌀을 섭취하는 양이 적어지는 것처럼 빵도 풍성한 물질문명에서 그 정체성은 극단적으로 분열된 양상으로 나타난다. 고대 로마시대에도 빵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식량이었지만 한편에서 사치와 향락의 도구로 분열되었다.

나는 오늘날 세계 대도시에서 유행하듯이 우리나라의 서울에서 유행하는 유럽식 사워도우 빵의 허상과 실상을 보고 있다. 요즘 유명 제과제빵 회사의 빵 대신 보다 질 좋은 빵을 파는 동네빵집 혹은 개인빵집이 유행인데 이러한 유행을 만들어내는 요인은 건강한 밀가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이었다. 유기농 밀가루를 더 좋아하고 거기다 우리밀이라면 더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소비성향이 지배적이게 된 것이다. 또 유럽식 사워도우(천연발효종빵)도 등장해서 유기농 밀가루 혹은 우리밀로 만든 천연발효종 빵은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이다.

우리밀 혹은 농가밀이라는 이름을 달고 유럽식 천연발효종 빵이라고 해서 줄을 서서 먹는다는 빵집의 빵의 실상은 매우 실망스럽다. 유기농 수입밀가루를 사용한다 해서 소위 밀가루의 역습을 피한다는 보장도 없다. 또 우리밀이라고 정말 건강한 밀가루일까? 실제로 그렇게 고급스럽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비싼 돈을 내고 사먹는 이유는 바로 극단적으로 분열된 두 가지 양극적 이미지에 있다. 밀가루 빵은 싸다. 그러나 건강에 좋지 못하다. 그러니 유기농밀가루, 또는 우리밀로 만든 빵은 비싸도 좋다. 이런 식량에 대한 양극적 이미지가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농가밀(우리나라 농가에서 생산된 우리밀을 대형제분소로 보내지 않고 중소형 방앗간에서 제분한 밀) 직접 농사짓거나 구매해서 제분하고 그것을 사워도우식으로 제빵해서 구워낸 진짜 사워도우빵은 소위 윈도우베이커리에서 판매하기에는 생산원가가 매우 비싸다. 그러므로 이런 빵을 만들어 먹는 소수의 사람들은 시장에서 그 존재 자체가 잊혀져 가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밀은 한국의 재래토종밀인 앉은뱅이밀, 미국밀이 우리나라에서 재배되어 착종된 금강밀, 조경밀, 고소밀 등이 있다. 그러나 이런 품종과 상관없이 모두 함께 제분되어 그냥 ‘우리밀’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밀가루는 사실 미국식 제분과정을 거쳐 강력분, 중력분, 박력분으로 생산될 수밖에 없다. 밭에서 생산된 밀 그대로 제분되는 밀(생산의 표준화는 현실적으로 아직 요원한 문제다)로 빵을 만들기는 매우 특수한 경험을 기초로 형성된 기술이 요청되므로 생산원가에서 매우 불리한 빵이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실제로 농가밀을 매우 극소량을 섞어서 농가밀빵이라는 이미지를 판매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빵은 불평등이고 가짜의 이미지를 팔아 흉내내는 종이빵에 불과하다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어느 도시의 무슨 빵으로 소문이 나면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빵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 빵에 영혼이 없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거기다 대고 진짜 빵이 어떻고 하며 주장해 보아도 이미 빵의 영혼은 사라져 버린 연기가 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빵을 먹으려면 시장에서 제대로 된 빵이 유통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사장 첫 번째 과제는 소비자들의 이미지 소비경향이 줄어들고 빵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작동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이미지를 좇아 비싼 빵값을 치르는 것에서 제대로 된 빵에게 제대로 된 값을 치르는 태도가 요청된다. 베이커들의 수준이 문제일 것이다. 베이커들이 우리밀을 이용한 특수한 경험에 과감히 도전하고 그것을 시장에 내놓을 수 있도록 도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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