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주연(경덕중 교사)
 올해 학교를 잠시 떠나 정책 연구를 수행하는 학습연구년을 보내게 되었다. 밤을 꼴딱 새워 책을 읽거나 벚꽃 핀 정오의 산책 시간이 짜릿하기도 하지만 학교를 지원하는 이런 저런 일들을 추진하다보니 생각만큼 여유가 있지는 않다.

오늘은 매주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습연구년 선생님들과의 워크숍이 있는 날이다. 진지한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워크숍이 진행되었고 끝나고 나서도 이야기꽃을 피우며 다들 갈 생각을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뭉그적대며 수다 삼매경이고 싶지만 결연하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

연수 강의실 한 층 아래 도서실로 총총 걸음을 옮겼다. 다른 날 같으면 6시 문 닫는 시간까지 서고를 휘적휘적 돌아다니며 다 읽지도 못할 책을 눈높이까지 쌓아 올렸을 텐데 오늘은 여기도 패스. 책 반납만 빠르게 해치웠다.

약속한 시간이 한 시간 가량 남았으니 시간이 빠듯하진 않지만 넉넉지도 않다. 어찌할까 잠깐 망설이다 기어이 집으로 향했다. 복장 부담 없는 워크숍이라 티셔츠에 청바지에 세상 편한 차림으로 갔으니 도저히 이대로는 못가겠다.

주차장에 차를 대충 세우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거실 불도 켜지 않고 곧장 안방으로 달려가 옷장 문부터 열어본다. 영 마뜩잖다. 출근할 때 입는 옷은 화사함이 없고 놀러갈 때 입는 옷은 품위가 없다.

아, 그러고 보니 화장도 안한 민낯이구나. 다시 씻기는 번거로운데 얼굴빛은 너무 어둡다. 시골 초가집 지붕 새로 얹듯이 파운데이션을 겹쳐 펴 바른다. 아니 얹는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이 쏜살같다. 늘어놓은 옷가지를 옷장에 구겨 밀어 넣고 다시 현관문을 나섰다. 그새 밖은 어둑하니 밤기운이 내려있다.

가는 시간 해봐야 10분. 늦어도 곤란하지만 너무 일찍 가도 몸 둘 곳이 없다. 시간 조절하느라 차 안에 잠시 앉았다가 문을 열고 나서는데 휑하니 뭔가 허전하다. 문득 오늘은 김영란씨가 살짝 원망스럽다. 따끈한 커피 한잔 사들고 가 나눠 마시고 싶은데 그조차 허락되지 않으니 말이다.

드디어 차에서 내려 걸음을 떼었다. 늘 들어서던 교정인데 가슴이 쿵쾅거린다. 아침마다 지나는 것이 지겹기만 하던 학교 중앙 현관을 야밤에 들어서는 기분이 묘하다. 무엇보다 오늘 나는 교사가 아니다.

또각거리는 신발소리가 퍽 민망해서 신발장 주변을 이리저리 뒤지고 찾다가 끝내 포기하고 까치발로 복도를 통과했다. 그리고 교무실로 들어서는 순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저분이구나,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 첫눈에 반한 운명의 짝을 만난 것처럼 그냥 알 수 있었다. 환한 미소, 어색한 듯 따뜻한 눈빛. 올라갔던 어깨가 쑥 내려간다.

난생 처음 내 발로 찾아간 아이 담임선생님 모습 위로 나의 모습이 겹쳐진다. 교무실 책상 그 자리에 앉아서는 더 활짝 웃어야겠다. 지금 눈앞에 우리 아이 담임선생님처럼 말이다.

이 시간 덕분에 학교로 찾아오시는 부모님 마음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아이 담임선생님께 가는 길은 설레고 궁금한 마음, 긴장되고 걱정되는 마음이실 테지. 그 마음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이 선생님의 미소구나. 더없이 안심되고 더없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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