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평소보다 붐비는 월요일 아침, 2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달려가 충주의 한 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예전부터 인연을 맺어온 선생님의 부탁을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공감교실 특강을 하게 되었다. 입시제도에 따른 교육과정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이고, 아이 들이 힘들어 하니 지켜보는 선생님들이 힘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업을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무엇을 할까 여러 날 고민한 끝에 관계 속에서 자기의 모습을 성찰하고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에고그램 활동과 내면의 성품을 찾아보는 활동을 준비했다. 50분 수업 중에 20분 집중하는 것을 힘들어 하는 아이들이라고 들었는데 어색한 첫 만남에도 불구 하고 2시간 동안의 활동을 잘 따라와 주는 아이들이 기특 하고 고마웠다. 입시 위주의 교육 속에서 물고기에게 하늘을 나는 능력을 길러주려 했던 건 아닌지 새삼 배움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지게 된다.
특강을 끝내고 현관문을 나서는데 영은이가 이층 복도에서 “선생님~” 부르더니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 내려온다.
“선생님, 진짜 또 오시면 안돼요?” 하고 팔짱을 끼며 매달 린다. 말이 없고 조용하던 영은이의 애교 넘치는 고백에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현관문까지 따라 나왔다 교실로 돌아가며 몇 번이나 돌아보는 영은이와 헤어져 운동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이 공사 중이어서 모래더미가 쌓여있는 바 람에 차를 운동장에 두었기 때문이다.
차에 타자마자 오랜만에 아이들과의 시간이라 긴장했던온 몸의 맥이 풀린다. 운전석에 털썩 내려앉아 크게 숨 한번을 내리쉬었다. 한숨 돌리고 시동을 걸려는데 빼곡하게 들어선 자동차 사이로 어슬렁어슬렁 걷고 있는 윤민이가 보인다. 햇살 때문인지 찌푸린 얼굴로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걷고 있다.
그냥 출발할까 잠깐 망설이다 차문을 열고 나갔다. “윤민 아~ 윤민아~” 연거푸 두 번을 불렀을 때 윤민이가 멈칫 하더니 고개를 돌리고 바라본다. 찌푸렸던 얼굴이 환해지고 잇몸까지 드러내 웃는 윤민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쉬는 시간인데 뭐하고 있어?”
“산책이요.”
“산책 좋아 하나 봐?”
“네, 기분이 좋아져요.”
“그렇구나. 보기 좋다. 그런데 아까 윤민이가 쓴 소감 중에 마음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았다는 건 무슨 뜻인지 좀더 들려줄 수 있어?”
“아~ 그거요? 잠겨있던 마음이 풀리는 것 같았어요.”
“뭔가 답답하다가 풀리는 것 같고 시원해졌나봐? 어떤 장면이 그랬어?”
“친구들 성품 찾아줄 때요.”
아! 윤민이는 그랬구나. 나도 모르게 탄성이 새어나왔다.
아이들이 찾아준 나의 성품
말이 어눌하고 행동이 느린 윤민이는 친구들과 활동 속도를 맞추는 것이 힘들어 보였다. 아이들과 편하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는데 서로 성품을 찾아주는 시간에 아이들이 윤민이의 성품 활동지를 성의 없이 작성해서 안타까웠다. 한 번으로 끝나는 특강인지라 윤민이의 성품을 보이는 대로 찾아 적어주는 것 외에는 딱히 내가 해줄수 있는 것이 없다.
친구들에게 서운할 만도 하건만, 친구들의 성품을 찾아 주어 좋았다고 말하는 윤민이의 심성이 그저 곱기만 하다.
윤민이 손을 잡고 운동장을 함께 어슬렁거리는 동안 가슴 속에 따뜻한 바람이 분다.
마음이 순수한 아이들과의 만남은 교사의 삶에 보석 같은 선물이다. 오늘, 윤민이와의 산책은 뜻밖의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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