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수업
교실 문을 열기 전, 숨을 한번 크게 쉰다. 살짝 긴장된다.
오늘 아이들과 나눌 수업의 주제는 ‘기억’이다.
아이들에게 13년 동안 살면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나 사건을 이야기하게 하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들 속에 한 아이가 기억을 말한다. 아이들 눈빛이 초롱초롱하다.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너도 나도 자신들의 기억을 말한다. 자동차 바퀴에 다리가 끼었던 사건, 너무 더운데 엄마가 자꾸 두꺼운 이불을 덮어주어 숨 막혔던 기억, 다리미가 손으로 떨어졌던 일, 언니와 바닷가에서 놀다 파도에 떠밀려갔던 기억, 친구와 눈싸움 하던 추억, 죽음이 뭔지 몰랐던 어린 시절 강아지가 죽고 나서 찾으러 다니던 시간들... 아이들은 신나서 이야기하고 다른 아이의 이야기를 숨죽이며 듣는다.

 
아이들이 말하는 기억에 따라 나도 떠오르는 기억을 이야기하였다. 더 깊은 바다를 보여주려고 아버지가 어린 나를 안고 바닷 속으로 들어가던 기억, 아버지가 외출할 때면 동네 슈퍼까지 따라 나가 아이스크림을 얻어먹던 기억... 참 희한하게 그렇게 밉고 싫은 아버지와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아버지 생각에 울컥하고 그 사랑에 뭉클하다.

아이들에게 기억 속의 기분을 물어본다. “그때 어땠어? 놀랐겠다. 무서웠겠다. 행복했겠다. 기뻤겠다. 슬펐겠다.” 그리고 묻는다. “그래서 그 일 이후에 달라진 건 없어?” 승호는 다리미가 오른손에 떨어져 그 때부터 왼손잡이가 되었다. 감자칼로 사과를 깎다가 손을 벤 아이는 다시는 감자칼로 사과를 깎지 않는다. 자동차 사고가 났던 아이는 그 뒤로 찻길에서 더 조심한다.

자기 삶 속의 기억을 말하는 아이들 눈빛이 참 생생하다. 친구의 삶을 들을 때면 몸을 앞으로 내밀고, 웃고, 이마를 찡그리고, 탄성을 올린다. 기억 속의 감정은 잊혀지지 않고 녹아있어 아이들의 삶에 변화를 주기도 한다. 놀랍고 신기하다. 기억을 말하고 기억 속의 감정을 말한다. 기억하고 있다는 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장면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기도 하고, 변화가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그것을 역사라고 부른다.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세월호 영상을 보았다. 수업을 준비하며, 6개반 수업을 하며 같은 영상을 여러 번 반복해서 봤지만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아이들이 붉어진 눈시울로 연신 눈가를 찍어낸다.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는 짝꿍의 등을 토닥거리기도 한다.

 
영상을 보고 노란색 종이에 자유롭게 글을 쓰게 하였다. 생각나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기도 하고, 느낀 감정이나 생각을 적기도 한다. 슬픈 마음을 적는 아이, 부모님께 사랑한다고 쓰는 아이, 돌아가신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는 아이, 안전에 대해 배우고 싶다는 아이, 어른이 되면 사회를 더 잘 이끌어 나가겠다는 아이, 살아있음에 감사한 것이 미안하다는 아이...

억지로 기억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을 기억한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 배움이 있고, 배움 속에 변화가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 아니겠는가? 아이들이 역사를 자신의 삶으로 가져간다.

수업을 준비하며 염려가 많이 되었다. 아픔을 직면하고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직면하는 스스로가 기특하고, 찾아가는 아이들이 대견하다.
오늘 교실 창문마다 아이들이 만든 노란색 종이 리본이 붙었다.

추주연(수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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