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상훈사! 그곳에 가면 힘든 우리들의 마음을 엄마의 품으로 안아준다. 요즘 명절 D 턴 족이 유행이라고 한다. 신조어로 집에서 출발해서 고향 집에 가서 명절 쇠고 여행지를 한두 곳 들러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형태라고 한다. 우리도 D 턴 족 계열에 들어섰다.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고 다음 날 담양을 들러 지리산으로 향했다. 지리산 자락에 둘러싸인 섬진강의 물빛은 맑고 햇빛에 빛났으며 굽이굽이 산자락에서 그 깊이와 숙연함이 묻어난다. 이번엔 호텔이 아닌 대중매체와 멀리하여 온전히 휴식을 위해 절을 찾았다. 산기슭에 자리 잡은 상훈사! 지리산은 다른 산들과 달리 깊이가 있고 웅장함이 느껴지고 대범함이 느껴진다. 그래서 지리산에 있으면 내가 가진 포부와 희망들이 더 꿈틀댄다.

 
산속 깊이 들어가면 푯말도 없는 절이 한 채 보인다. 내가 이제까지 가봤던 절과는 사뭇 다르다. 평범한 한옥 같지만, 안으로 들어서면 스님들이 합배를 해주시며 우리를 반겨주신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우리를 스스럼없이 반겨주신다. 11시 30분 공양시간에 맞춰 출발했지만 초행길이라서 죄송스럽게도 시간을 지키지 못했다. 상훈사! 아직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듯한 이곳은 한눈에 봐도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보통 절들의 주변 풍경은 사람이 가꾸고 만져놓은 것들이었는데 이곳 상훈사 만큼은 달랐다. 산속의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그대로 보존해 놓았으며 자연을 피해 건물을 지으려 노력하신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오랜 시간 알아보고 싶고 스님들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싶어진다.
 
 
우린 낯선 여행객 중 한 명 이었지만 큰 스님의 배려와 이념으로 상훈사와 좀 떨어진 독채공간을 사용할 기회를 얻었다. 이곳의 명칭은 ‘입설루’라고 하는데 달마 대사의 제자 혜가스님이 스승께 가르침을 받고자 청하였으나 스승께서 답이 없자 그 도를 구하는 절실한 마음을 다하기 위해 눈밭에 무릎을 꿇고 자신의 팔을 잘랐다고 한다. 그래서 그와 같은 마음으로 간절히 정진하라는 뜻으로 큰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셨다고 한다. 입설루는 123개의 문과 구들의 두께가 1m가 넘고 바닥은 황토에 우뭇가사리, 옥수수수염 등 12가지가 넘는 재료들을 넣어 다졌다고 한다. 그래서 일반 얇은 구들과의 느낌은 무척이나 다르다고 한다. 풍수로 봐서는 정남향에 위치한다. 그래서 겨울엔 빛이 깊고 여름엔 시원하며 습기가 없고 양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한테는 더욱더 좋은 터라고 스님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점심엔 스님들의 좋은 말씀으로 시간을 보냈다. 스님들이 가시자 현대 문명과 아주 근접하게 살던 우리는 조금씩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휴대전화기의 수신은 약하고 인터넷 창을 검색하려면 몇 분이나 걸렸다. 결국, 분신 같던 휴대전화기를 치우고 구들장에 몸을 뉘여 클래식도 듣고, 밖으로 나가 지리산의 정기도 마셔본다.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을 보고 생각들을 정리하니 드디어 나의 머리에 여유도 느껴진다.
 
 
우리는 기독교이지만 스님들껜 우리 나름대로 최소한의 예의를 차려 합배를 했다. 저녁 시간 이후 수월 스님께서 아주 귀한 차를 내어주셔서 우리는 몸 둘 바를 몰랐다. 5년 동안 담가놓은 솔잎 발효 진액이었다. 차 한 잔과 빗소리와 함께 우린 수월 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담소를 나눴다. 스님의 말씀 깊이를 우리는 다 헤아릴 순 없었지만, 더없이 좋은 말씀임이 틀림없다. 종교를 떠나서, 종교적인 이야기를 다 배제하고 말씀을 하실 순 없었겠지만, 우리를 배려하시면서 말씀을 전해주시려는 그 마음이 아직도 우리 마음속엔 잊히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스님의 말씀과 그 향긋하던 차 한 잔이 그립고, 뿌연 도시에서 사는 지금, 청정한 지리산의 상훈사가 그립다. 봄엔 산수유와 개나리와 벚꽃이 무척이나 아름답다고 한다. 상훈사는 심신이 지친 현대인에게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종교에 상관없이 항상 열린 곳이라고 하셨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입설루의 구들장이 생각나는 밤이다. 꽃 피는 봄에 다시 뵙기를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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