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호 김여사가 사는법
세월이 묘약
달력 한 장 남겨놓고 김여사는 남편의 내년 용돈협상에 들어갔다. 몇 년 전엔 남편이 카드를 사용하면 급여통장에서 자동이체 방법으로 따로 용돈이 없었다. 그러다보니 카드 값 결제하는 날엔 금액이 너무 많이 나와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김여사는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남편의 용돈통장을 따로 만들어 일정 금액을 이체해 주고 있다. 남편은 “꼭 필요한 것만 카드 긁었어! 요즘 돈 쓸게 없어!”하고 이유를 대지만, 김여사가 볼 땐 카드라서 기분파인 남편의 씀씀이가 더욱 커진 것 같았다. 남편은 “세상 불공평하지 않냐? 재주는 누가 부리고 용돈을 타 써야 하다니 쩝 !”하며 입맛을 다신다. 김여사는 예전 같았으면 “당신은 용돈이라도 있지! 나는 용돈도 없어요!”하며 잔소리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남편의 희망대로 무조건 용돈을 인상해 줬다. 김여사의 결정에 남편은 “어쩐 일이냐? 계 탔냐?” 하며 어리둥절해 한다. 김여사가 “일 년 동안 고생했어요?”하니 남편이“내가 뭘?”하면서도 좋아 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김여사의 행동이 이렇게 바뀐 건 나이 한 살 더 먹을수록 남편이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요즘은 정년이 있다 해도 누구도 장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고맙기 때문이다. 남편이 술이 얼근해져서 들어온 어느 날 “애들 대학 졸업할 때 까진 버터야 하는데..”하며 혼잣말처럼 하곤 한다. 그때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들어오는 아들에게 “고생이 많다!” 하며 어깨를 툭툭 쳐주니 아들은 “아버지가 고생을 더 많이 하시죠!”하며 남편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게 아닌가? 남편은 술기운이 오른 상태에서 아들의 대답이 기분 좋았는지 껄껄 하며 호탕하게 웃는 것 이였다. 그날은 평소에 알던 철부지 아들이 아니라 의젓한 모습 이였다. 아들도 아버지의 마음을 느낀 걸까? 김여사가 남편의 마음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세월이 묘약인 것 같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