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에게 악수를 청하며
의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에게 악수를 청하며

“항구 도시 피레에프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항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기 직전인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다, 가을의 따사로움 빛에 씻긴 섬, 영원한 나신 그리스 위에 투명한 너울처럼 내리는 상쾌한 비, 나는 생각했다. 죽기 전에 에게해를 여행할 행운을 누리는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의 서두입니다. 이번 그리스 여행에 있어 크레타섬은 우리에게 미지의 환상의 섬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런 곳을 직접 가 본다는 게 꿈만 같았습니다.

새벽의 이라클리온  공항
새벽의 이라클리온  공항

 

일단 우리는 고대도시 코린토스에서 아테네로 다시 돌아와 렌트카를 반납하고, 그리스 중남부, 아티카 지방의 도시, 아테네의 외항이며 사로니코스만에 있는 고대 그리스 이름은 피레에프스, 영어 이름 피래우스(PI-RAEUS)라는 그리스 제1항구로 갔습니다. Ferry는 밤 9시에 출발해서 크레타섬의 이라클리온 항구까지 9시 15분이 걸리며 새벽 6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이다. 우리는 침대칸을 미리 예약했지만 어떤 사람들은(집시처럼 보이기도 하고, 가난한 노동자처럼 보이기도 하고) 우리나라 70년대에 유행했던 두툼한 밍크 담요를 하나씩 끌어안고 승선하는데 나중에 보니 그분들은 복도에 담요를 깔고 취침을 하더군요. 아기들도 꽤 있었는데 마음이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그분들은 나름의 노하우로 제일 조용하고 제일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잡더라구요. 

북유럽의 페리와는 다른 풍경이어서 좀 당황했습니다. 사람 사는 형태가 꽤 다양하다고 느꼈습니다. 새벽에 선실 밖에 나가 본 일행이 복도뿐 아니라 카페, 식당의자까지 점령해서  사람들이 자고  있다고.

이와 달리 우리는 아늑한 선실에서 미리 준비해온 음식으로 늦은 저녁도 먹고 펍에서 맥주도 한 잔, 샤워도 하고 편하게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도착. 그 많은 사람들이 배를 빠져 나가는 데는 채 20분이 안 걸렸습니다. 큰 여행가방을 가진 우리는 맨 나중에 내리게 되었지요.

새벽의 이라클리온 항구는 아주 적막했습니다. 택시 2대로 나눠타고 이라클리온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리더가 미리 예약한 렌트카를 찾으러 간 사이 서서히 터오는 여명에 하늘이 얼마나 예쁜지 감탄을 하며 사진 찍기 바빴습니다. 내 생의 몇 안 되는 인생컷을 획득했지요. 우리나라의 시골 버스터미널 같은 분위기의 공항 이름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입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Nikos Kazantzakis, 1883.2.18 ~ 1957.10.26.)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크레타섬 이라클리온에서 태어 났습니다. 터키의 지배 아래 어린 시절을 보내며 기독교인의 박해사건과 독립전쟁을 겪은 그는 자유와 자기 해방을 얻기 위한 투쟁을 했습니다. 특히 자유에 대한 갈구는 여러 인물들에게서 영향을 고루 받으며 점점 커져갔습니다.

영혼의 자유로움을 갈망한 그는 모레아를 비롯한 자신의 조국 그리스는 물론 남유럽, 서유럽, 북유럽, 아프리카, 멀리 중국과 일본까지 전 세계를 방랑했습니다. 
한국에 오지 않음이 참으로 아쉽게 다가왔습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육필원고와 유품, 작품들 그랬더라면  우리나라에  대한  멋진  여행기가  쓰여졌을 텐데  말입니다.

니코스카잔차키스박물관
니코스카잔차키스박물관
니코스카잔차키스박물관~그리스인조르바 철제조각
니코스카잔차키스박물관~그리스인조르바 철제조각

 

이라클리온의 산골 언덕 마을에 있는 그의 박물관은 실제로 그의 아버지가 살던 집터에 세워져 있습니다. 박물관 입구에는 <그리스인 조르바>의 한 장면인 철제조각이 우리를 환영해 주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벽화와 악수를 나누고 내부에서는 그의 생을 요약해 놓은 단편 영화(한국어 자막)를 보았습니다. 소설뿐 아니라 희곡, 시로도 엄청나게 많은 양을 끊임없이 쓰고 발표했던 그는 격변의 시기를 살아낸 만큼 삶의 고뇌를 다양하게 풀어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많은 여행을 토대로 글 속에 녹여 낸 그의 작품들은 경이롭고 철저하게 작가의 삶을 살다 간 그가 정말 위대해 보였습니다.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요소는 여행과 꿈’이라고 말한 그는 ‘위대한 여행자(The great traveler)’입니다. 

끝으로 그의 묘비명을 그리스어, 영어, 우리말로 옮겨 봅니다.
“Den elpizo tipota, Den forumai tipota, 
Eimai eleftheros.”
“I hope for nothing, I fear nothing, I am free.”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롭다.”
<다음은 미노아문명을 찾아가는 여정이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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