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동에서 '헤어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미용장인 이미숙님이 헤어를 손질하고 있다. ⓒ최명천 마을기자
산남동에서 '헤어파크'를 운영하고 있는 미용장인 이미숙님이 헤어를 손질하고 있다. ⓒ최명천 마을기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언니, 내가 다니는 미용실 원장님이 이번에 미용 장인이 되었다는데 취재해야 되지 않을까?”

전화를 받으면서 기자로서 당연히 취재를 해야 하는 것은 맞는데 개인적으로 다른 고민이 있어 답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한참을 생각하다가 “응, 알았어 언제 가야 하는데?”

지인은 미용장인패가 나오면 그때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자고 한다.

6월 11일 사진기자를 대동하여 미용실을 방문하였다.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문 정면에 커다란 나무판에 훈장처럼 생긴 미용장인패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마침 손님이 있어 잠시 기다리고 있다가 인터뷰를 시작하였다.

기자 : 우선 미용장인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미용장인 : 네, 감사합니다.
기자 : 미용을 언제부터 시작하게 되었나요?
미용장인: 상업고등학교를 나와 85년 삼성 공채로 관리부서에 근무를 하게 되었는데 가끔씩 미용실에 가면 손님이 넘쳐나고 있어 미용을 배우면 돈을 많이 벌 것 같아 회사 퇴근 후에 미용학원을 다녀 한 번에 미용사 자격에 합격하였습니다.
기자: 미용사 합격한 후에 어떻게 하였나요?
미용장인: 합격한 후에 6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미용실에서 보조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월급이 7만원이었고 청소를 시키는데 물걸레를 사용하지 말고 손으로 직접 닦으라는 등 지금 말로 주인이 갑질을 하여 1년 만에 그만두고 서울로 2년 가까이 특강을 받으러 다니고 이후 수원에서 헤어디자이너로 근무를 시작하여 청주에 내려오기 전까지 미용사로서 활동을 하였어요.
기자: 이곳(헤어파크)은 얼마나 되었나요?
미용장인: 결혼하면서 95년도에 청주에 내려왔고 청주에서도 몇 군데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이곳은 산남지구에 아파트가 들어섰던 시절에 시작했어요. 이곳과 함께 봉명동 아이파크쪽에도 미용실을 운영하였는데 아이파크쪽은 미용실에 직원을 두고 관리하다가 한곳에 집중 하려고 아이파크 쪽을 정리하고 산남동을 선택했습니다.
기자: 미용장인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며 얼마나 공부를 했나요?
미용장인: 어머니가 지금 85세이신데 어머니의 소원이 딸이 살아 생전에 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싶어 하셔서 미용장인에 합격하는 것이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며 효도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시작했습니다. 매일 미용실 손님을 받아가면서 미용실 일과가 끝난 후에 연습에 연습을 하여 하루 3시간 이상을 잠을 잔 적이 없이 노력했습니다.
기자: 미용장인의 시험자격은 어떻게 되나요?
미용장인: 미용장인은 1년에 상하반기 2번 시험이 있는데 미용실에서 근무한 경력이 9년 이상이 되어야 자격이 되고 직원으로 근무했으면 경력확인서가 있어야 하고 사업자는 경력자로 9년이 되어야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집니다.
기자: 미용실을 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는지요?
미용장인: 미용실은 서비스업이다 보니 아파도 아프다고 표현할 수도 없으며 언제나 밝은 표정으로 대해야 하는 상황 이지만 고객에게 최선을 다해 고객이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볼 때가 가장 기분이 좋습니다.
기자: 앞으로의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
미용장인: 첫번째로 지금도 ‘효 실천업소’로 75세 이상 어르신들에게 머리컷도 저렴하게 해 드리고 있는데 계속 이어갈 것입니다. 두 번째로 미용장인이 되고자 하는 미용인에게 충청북도 지회장을 중심으로 미용장인을 배울 때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을 저렴하게 배울 수 있도록 선도적인 길을 하고 싶습니다. 세 번째로 곰두리체육관에서 17년 동안 봉사를 해 왔는데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마을에서 봉사를 계속하고 싶습니다. 네 번째로 기회가 된다면 더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 강단에 서고 싶고 지역의 명장과 나라의 명장이 되고 싶습니다.

미용실에 걸려 있는 미용장인 인증패 ⓒ최명천 마을기자
미용실에 걸려 있는 미용장인 인증패 ⓒ최명천 마을기자

미용장인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벽면에 붙어 있는 상장들을 훑어보니 ‘국제한국미용페스티벌’, ‘충북도지사패 미용기술경연대회’상 등 여러 개의 상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동안 노력한 발자취의 결과물일 것이다.

보통 미용장인이 되기까지 7수~8수를 해야 되는 길이라고 하는데 이미숙 미용 장인은 3수만에 거머쥐었다고 하니 그 노력이 대단하였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이번 시험에 도전한 시험생이 429명, 그중에서 28명이 합격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합격이 값진 것은 시험 보러 가는 당일 남편과 출발을 하고 가다가 다른 동행자를 태우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남편은 가지 못하고 미용장인의 형님이 운전을 대신하여 시험을 치르러 갔다고 한다. 이미숙 미용장인은 교통사고로 한쪽 어깨 쪽이 움직이기 불편하였다고 한다. 한쪽 어깨 쪽이 움직이기 어려운 가운데 정신력으로 버티며 시험을 보고 시험을 다 보고 나서 정신줄을 놓았다고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것 같다는 생각이 들며 아픈 가운데서도 시험을 보아 합격을 하였으니 값진 미용 장인의 상이 될 것이다.

현재도 분평동 동사무소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도 하고 다른 몇 군데 강의를 하면서 앞으로 대학에서 강의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는 이미숙 미용장인의 꿈이 어디까지인 줄은 모르겠지만 꿈을 위해 한 발자국씩 가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또 사회를 위해 보람되고 값진 삶을 위해 꾸준히 봉사를 해 나가고 있어 봉사상·시장 표창도 있는 것을 보면 그녀의 활약상을 기대하며 중년의 나이는 물러나고 꿈의 나이가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키워드

#미용장인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