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유승한내들 107동 김광일, 박미옥씨 댁

요즘 천안함 사건으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 사고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나 또한 마음이 무겁다. 특히나 지금 아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는 그 마음이 더할 것이다. 일 년 전 하나뿐인 아들을 군대 보내고 그리워하다 아들이 며칠간 포상휴가를 나오는 바람에 생기가 도는 김광일 씨 댁을 찾아갔다.


끼’ 많은 아들

산남동 주민자치위원, ‘두사모(두꺼비를 사랑하는 모임)’, 아파트 동대표 까지 맡아 마을 일에 몸을 아끼지 않는 김광일 씨(52세). 처음 만났을 때는 얼굴만 보고 ‘젊은 사람이 되게 무게 잡네’ 하며 은근히 흉봤는데, 나이를 알고 나선 고개가 끄덕여졌다. 엄청 동안이구나.

아들이 다시 군대로 돌아가기 전에 하려고 서둘러 약속을 잡았더니 시간이 너무 늦었다. 그가 사는 산남유승한내들 107동에 갔을 때는 저녁 8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맞은편 벽에 커다란 스킬자수 액자가 걸려 있고, 현관문 위에는 ‘환영합니다’라는 글자가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 그걸 보니 웃음이 나온다. 문을 열어준 까무잡잡하니 밤톨같이 생긴 청년이 대뜸 “군복 입을까요?”하고 물어온다. 아니라고, 이따 입은 모습만 잠깐 보여주면 된다고 말하고 두 부부와 함께 거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김광일 씨 아들 재웅이는 지금 22살이다. 대학 다니다 군대 간지 이제 일 년쯤 됐는데, 경기도 고양에 있는 부대에서 장갑차를 모는 장갑병으로 복무 중이다. 이번에는 사격 20발을 다 맞추고, 윗몸 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3킬로미터 달리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 ‘특급전사’가 된 기념으로 9박 10일 포상휴가를 받아 나온 거란다. 하지만, 아직도 휴가가 많이 남아 있다. 절에서 하는 장기자랑에 나가 노래 불러 1등하고, 전반기 정신집중교육 중 체육대회 응원상, 대적관 5분 스피치 1등해서 받은 휴가는 그냥 있다. 어떻게 불교 장기자랑에서 1등을 했냐고 물었더니, 원래는 후배 둘이랑 같이 힙합이나 랩을 하려고 갔는데 가서 보니 심사위원들이 다 할아버지더란다. 즉석에서 다시 안무 짜고 ‘자옥아’를 흥겹게 불렀다. 대적관 스피치는 ‘안보의식’을 키우기 위한 일종의 웅변 같은 건데 경쟁률이 꽤 높았단다. 군대 가기 전에는 헬스장에서 열린 장기자랑에 나가 6개월 무료이용권을 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참 대단하다. 이쯤 되면 ‘우정의 무대’ 에도 한번 출연해야 되지 않을까? 엄마 닮아 키는 좀 작지만 축구, 테니스, 탁구, 당구 등 운동도 잘하고 지금은 짧게 깎았지만 군대 가기 전에는 ‘퍼머’도 했었다. 경영자의 꿈을 키우고 있다지만 그 배짱과 재치라면 나중에 연예인을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딸 못지않은 다정다감한 아들

유쾌한 젊은이를 만나 얘기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시계바늘은 벌써 10시를 가리킨다. 그런데 오늘이 마침 부부의 결혼 22주년 되는 날이란다. 그가 교사로 근무하는 학교에서 직접 만든 특별한 와인을 꺼내 다 같이 건배했다. 올해는 얼떨결에 이렇게 지나가지만 전에는 매년 가족여행을 갔었단다. 특히, 재작년하고 작년 결혼기념일은 아들이 챙겼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던 재웅이는 과외로 돈을 벌어 부모님께 결혼기념일에 서울구경도 시켜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사드렸다. 살림뿐 아니라 피아노교습을 하며 돈도 벌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돈 쓸 줄 모르는 엄마를 위해 백화점에 모시고 가 선물도 사드렸다. 어떻게 그런 기특한 생각을 했냐고 했더니 “사랑을 많이 받아서”라고 한다. 군대 가서 앞 뒤 빽빽이 깨알 같이 써 보낸 편지에도 부모에 대한 아들의 지극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구구절절 드러나 있다. 슬하에 달랑 아들 하나라 아쉬울 법도 하지만, 이런 아들이라면 자식 여럿 가진 사람 부럽지 않겠다.

"요즘 천안함 사고 소식을 보면서 가슴이 메여요. 우리 재웅이처럼 거기 있는 군인들도 모두 다 부모에게는 둘도 없는 소중한 자식들일텐데 그렇게 어이없이 죽다니 얼마나 기가 막힐까. 그 꽃다운 나이에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도 안타깝지만 그 부모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할 얘기는 끝이 없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아쉬운 마음으로 일어섰다. 며칠 있으면 다시 군대로 돌아갈 재웅이가 무사히 제대하길 바라며 그 집을 나섰다.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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