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에버빌 101동, '산남돼지감자' 다은이네

“교육청 앞에 산남돼지감자 있잖아요. 거기 사장님이 예전에 만화가 이현세 문하생이었대요. 그 집 딸이 중학생인데 아빠를 닮았는지 만화를 그렇게 잘 그린대요.”
동네 소식통인 신영 기자 말에 귀가 솔깃했다. 어쩐지 전에 그 식당에 밥 먹으러 갔을 때 한쪽 벽 책꽂이에 만화책이 잔뜩 꽂혀 있어서 특이하다 했는데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나도 만화 엄청 좋아하는데. 이번엔 그 집으로 가볼까?

눈에 띄는 ‘얼짱’ 가족사진

엄마가 집에는 대접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 식당으로 오라는 걸 집도 봐야 된다고 우겨서 집으로 가 딸(이다은, 수곡중 2)을 먼저 만났다. 산남 에버빌 101동. 다은이네 집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식당 하는 집 맞아? 이렇게 깔끔할 수가. 혹시 우리 온다고 어제 대청소했나? 모녀가 하얀 웨딩드레스를, 부자가 턱시도를 입고 찍은 가족사진이 눈길을 끈다. 거기에 아이들만 없다면 웨딩사진이라고 해도 믿겠다. 딸은 엄마를, 아들은 아빠를 빼 닮았다. 다들 인물이 훤하다. 이제 고3이 되는 오빠는 밖에 나갔단다.

엄마가 없으니 여기저기 기웃거리기도 조심스럽다. 그래도 다은이가 까칠하게 굴지 않아서 다행이다. 여중생답지 않게 털털하고 순해 보이는 다은이 이마에는 청춘의 상징인 여드름꽃이 발갛게 피어 있었다. 나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 싶으니 웃음이 난다. 아이들은 뭐를 해도 사랑스럽다. 어린 친구를 만나니 유쾌하다. 방 구경 좀 시켜달라고 했더니 순순히 자기 방문을 열어준다. 책상이랑 침대, 책꽂이 등 여느 학생들 방이랑 다를 게 없다. 피아노가 놓여 있어 피아노도 치냐고 물었더니 어릴 때 조금 쳤단다. “만화 잘 그린다며? 그려놓은 거 있으면 보여줘라.” 했더니 노트를 하나 꺼내 준다. 한 장 한 장 넘겨보니 여러 인물이 나오는데 마치 일본만화를 보는 것 같다. 스토리 있는 만화가 아니라 조금 아쉬웠지만, 선이 자연스럽고 섬세해 감탄이 나온다.


따로 전문적으로 배우는 건 아니고 그냥 그리는 게 좋아 자주 그린다고. 학교에서도 만화동아리(‘천지상몽’ - 하늘이라는 종이 위에 그리는 꿈)에 가입해 열심히 활동 중이다. 인터넷카페도 운영되고 있대서 보자고 했더니 집에는 컴퓨터가 없어 가게에 나가야만 볼 수 있단다. 오빠도 컴퓨터 하려면 가게 가야 돼서 자주 가는데 그러다 바쁠 땐 식당 일도 많이 도와드린다고. 부모님이 참 머리를 잘 쓴 것 같다. 자식들 얼굴도 자주 보고, 컴퓨터 관리도 되고, 일꾼도 생기고 일석삼조다. 다은이가 지금 제일 좋아하는 만화는 ‘고스트 바둑왕’ 인데 스토리보다는 그림이 좋아서란다. 자꾸 보면서 따라 그린다. 23권짜린데 집이랑 가게에 다 있단다. 신난다! 빌려 달라고 해서 나도 읽어야지.

제2의 집 - ‘산남돼지감자’

다은이 학원 갈 시간 맞춰서 집을 나와 부모가 하는 식당 ‘산남돼지감자’로 갔다. 문에 그려진 ‘산남돼지감자’ 정다운 돼지 캐릭터도 다은이 작품이란다.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식당 안은 손님이 없이 한산하다. 아직 점심 전인 내 뱃속에서 밥 달라 아우성이다. 우선 ‘뼈해장국’을 한 그릇 주문하고, 주방에 있는 다은이 아빠(이용만, 46세)에게는 간단히 인사만 하고 다은이 엄마 김종희(44세)씨랑 얘기를 나눴다. 다은이 아빠가 직업을 바꾸게 된 이유가 제일 궁금했다. 유명 만화가 문하생을 그만두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단 만화책을 한권 내게 됐는데 출판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빚만 지게 되었다. 그 일이 아예 만화에서 손을 떼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지금도 문하생으로 가려면 얼마든지 다시 갈 수 있지만 그럴 생각은 없단다. 그래도 그 피는 못 속이나 보다. 매일 아빠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봐서인지 딸내미가 그 뒤를 이었다. 다은이가 네 살때 그린 인물화를 아빠가 보더니 선을 자신 있게 잘 그렸다고 칭찬하더란다. 시도 때도 없이 종이만 있으면 만화를 그려대는 다은이. 열심히 그리는 만큼 실력도 늘어난다. 만화를 좋아하고 잘 그리는 다은이지만 커서 뭘 할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엄마 마음엔 다은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졌으면 하지만, 하고 싶다는 걸 억지로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딸이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응원하며 지켜볼 수밖에.


다은이네는 ‘식당하면 큰돈은 못 벌어도 밥은 먹고 살겠지’ 하는 심정으로 수원에서 살다 청주로 이사와 식당을 열게 되었다. 어떻게 청주로 올 생각을 하게 됐느냐 물었더니 뜻밖에도 ‘가로수길’을 얘기한다. 전에 여행 왔을 때 가로수길이 너무 아름다워 막연히 여기 와서 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복잡하지 않은 도시라 이사 올 결심을 굳혔다고. 감자탕이 맛있다고 소문나 어느 정도 자리는 잡았지만 아직 손님들에게 인심 팍팍 쓸 만큼 장사가 잘 되는 건 아니란다. 장사하면서 자꾸 야박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고.

맛있는 밥을 주인과 얘기를 나누며 오래오래 먹고 두 손 가득 만화책을 빌려 나오며, 아무 연고도 없는 동네에 자리 잡고 살게 된 다은이네가 여기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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