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칸타빌 204동 주민자치위원 남기예 씨 댁

이번에 방문하기로 한 곳은 현재 산남동 주민자치위원이자 충청북도새마을부녀회장으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남기예 씨(59세) 댁이다. 어떤 단체의 ‘장’을 맡고 있는 사람을 찾아가는 일은 여전히 어렵지만,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이라 오늘은 그 마음이 좀 덜하다. 그녀와 나는 2007년 두꺼비생태공원 안내자 양성교육을 같이 받았더랬다. 교육을 마친 후에는 볼 수 없어 서운했는데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궁금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그녀의 집을 찾아갔다.


피아노에 그림까지 - 그녀는 팔방미인

산남 칸타빌 204동. 벨을 누르니 그녀가 문을 열어준다.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어도 그 모습은 여전히 곱다. 그런데 그런 그녀보다도 더 내 눈길을 끄는 것이 있었으니 들어서는 입구에 진열돼 있는 수석들이다. 앙증맞기도 하지. 장미꽃 같은 분홍빛 돌도 있고 보석 같이 반짝이는 돌도 있다. 수집에 취미가 있단다. 중문을 여니 한 쪽에 그림이 여러 점 차곡차곡 쌓여 있다. 어, 피아노 치는 줄 알았는데 그림도 그리시나? 혹시 자녀가 그림 전공인가? 순간적으로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물어보니 그녀가 그린 거란다. 전에 취미로 그림을 그렸는데 아마추어가 겁도 없이 100호 그림도 그렸다며 웃는다. 요즘은 바쁘고 장소도 마땅치 않아 통 못 그린다고. 주방 벽에 걸린 겁 없이 그렸다는 그녀의 연꽃 그림이 따뜻해 보인다. 역시 음악 전공답게 거실 한 옆에는 까만 피아노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주방 식탁에 앉아 원두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먼저 왜 교육만 받고 생태공원 안내자 활동을 안했느냐 볼멘소리를 했다. 같이 하고 싶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고,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하고 싶단다. 두꺼비가 잘 살아야 될 텐데 하며 지금도 한 걱정 하는 걸 보니 비록 활동은 못하지만 ‘두꺼비생태공원’을 아끼는 마음은 한결같구나 싶어 기분이 좋아진다.

남편은 색소폰, 아내는 피아노

그녀는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아들은 작년에 결혼해서 서울에 살고 있는데 애니메이션 PD란다. 지금 SBS에서 방영하는 ‘렛츠 고! MBA'가 아들 작품인데 시청률 오르게 홍보 좀 많이 해달라고 당부한다. 엄마를 많이 닮은 예쁜 딸들은 다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데 큰 애는 성악, 둘째는 미술을 전공한다. 그럼 지금 집에는 혼자 있는 거냐고 했더니 안방에 남편이 있단다. 남편도 나와서 같이 얘기 하면 좋겠다고 하니 남 앞에 나서기 쑥스럽다며 점잖게 인사만 하고 다시 들어간다. 가족사진에는 수염이 없었는데 어느새 수염을 기르셨네? 아무래도 혼자보단 가족이 나오는 게 나을 것 같아 불편해 하는 걸 우리 마을 신문을 위해서 한번만 협조 하시라고 강권했다.


학자답게 눈빛이 맑고 선한 인상을 가진 그녀의 남편 조택동 씨(58세).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까지 선후배 사이였던 그녀의 오빠 소개로 만났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동생을 소개시켜줬을까. 그는 그런 선배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고 지금껏 충실히 든든한 그녀의 동반자 노릇을 하고 있다. 그녀를 얼핏 보면 부잣집 딸로 고이 자랐을 것 같은데 실제로는 집안이 넉넉지 않아 학창시절 고생을 많이 했단다. 학비가 없어 중, 고등학교, 대학교도 그녀가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장을 들고 직접 교장을 찾아가 담판을 짓고 무료로 다녔다고 한다. 타고난 재능과 배우고자 하는 그녀의 열정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여리게 생겼는데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그녀가 새삼 대단해 보인다. 그는 재주가 많은데 그렇게 힘들게 산 그녀에게 잘해 주고 싶었단다. 농담 반 진담 반, 평생소원이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는 거라고. 그녀를 위해 자신의 직장과 먼 ‘청주’로 이사를 오고 가끔 장미꽃도 사다 집에 꽂아놓는 자상한 남편이다. 우리 앞에도 마지못해 나온 줄 알았는데 웬걸, 요즘 색소폰 배우고 있다는 소리에 관심을 보였더니 잠깐 한 곡 들려준단다. 직장 동료들과 'OS앙상블'이란 모임을 만들어 같이 연습 하는데 앞으로는 봉사활동도 다닐 거라 요즘 열심히 연습 한다고. 이런 적은 처음인데 부부가 같이 악기를 연주해 준다니 마음이 설렌다. 혼자 음악회에 온 것 같았다. 그녀는 피아노를 치고, 남편은 색소폰을 불고. ‘사랑이여’를 같이, 남편 혼자서 ‘러브스토리’를 한 곡 더 연주했다. 역시 어우러진 소리가 더 듣기 좋았다. 아직 초보라 더 연습해야 된다지만 나는 이렇게 들을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 아들도 피아노를 잘 친다고 한다. 딸은 노래 부르고 아빠는 색소폰 불고. 나중에 ‘가족 음악회’를 열 수도 있겠다.
오늘 같은 기회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같이 생태공원 안내자 활동 안 한다고 계속 서운하게만 생각했을 텐데 '다시 만나니 참 좋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그 집을 나섰다.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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