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동 33-7번지 '가람식물원' 정학명 씨 댁


택지개발은 예전에 끝났지만, 아직도 산남동은 여전히 공사 중이다. 여기저기서 ‘뚝딱뚝딱’, ‘웽~’ 소리가 요란하다. 건물 사이사이 빈 땅과 상가들이 새 주인을 만나며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어느 날인가 휑하던 산남 칸타빌 2차 아파트 정문 건너편에도 큰 화원이 생겼다.

"올 3월에 가게 열고 분평동 화원이랑 같이 하다가 6월에 완전히 이사 왔어요.”

분평동 화훼단지에 있다가 건축법상 허가기간이 종료돼 산남동으로 왔다는 ‘가람식물원’ 주인장 정학명 씨(45세). 산남동 33-7번지, 400여 평의 대지에 터를 잡아 가게와 살림집을 차렸다.

▶수염이 눈에 띄는 ‘재주꾼’

밖은 찬바람 몰아치는 겨울인데 그를 찾아 들어선 비닐하우스 안은 화사한 봄날이다. 여기저기서 만개한 꽃들이 계절을 잊게 하는데, 그래도 한 쪽에 놓인 연탄보일러가 반갑고 손이 저절로 내밀어진다. 거기다 땅콩과 고구마를 구워먹으며 그의 가족과 이야기를 나눴다.


수염을 기르고 생활 한복을 입어 잠깐 봐도 기억에 남을 인상을 가진 정학명 씨. 언제부터 꽃집을 하게 되었을까? 총각 시절 잠깐 교도관 노릇을 했었는데 작은 사건으로 감봉처분을 받고 그만 두었단다. 초기 자본이 적게 드는 꽃집을 시작해 장소만 바꿔가며 오늘날까지 쭉 하고 있다고.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교도관보다는 꽃집이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시도 쓰고 글씨도 쓰고 조각도 한단다. 멋들어진 ‘가람식물원’ 상호도 그의 솜씨다. 이사 와서 마당에 장승을 깎고 바람개비를 만들어 세웠다. 그렇지만, 정신이 없어 요즘은 통 시를 쓰지 못했다.

방송대 국문과에 다니다 만난 아내 -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꽃집 아줌마 이은숙 씨(44세). 꽃집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오히려 즐겁다고 손을 내젓는다. 올해 기억나는 일로 배드민턴 대회에서 준우승해 쌀 10킬로그램 받은 일을 꼽는다.

손님에게 깍듯이 인사하는 듬직한 아들 형제 규수(14세), 지용(11세)이도 참 보기 좋았다.


▶ 가족이 함께 있으니 좋아

그들 가족은 식물원에 딸린 작은 집에서 같이 산다. 이쪽으로 이사 온 소감을 물으니 ‘대만족’이란다. 전에는 가게와 집이 따로 있어 아이들 보기가 힘들었는데, 여기는 같은 공간에 있으니 참 좋다고. 아이들이 시야에 들어오니 부모는 안심이 되고,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정된다. 큰 아들 규수는 이사 오고 나서 전교 등수가 100등이나 올라 용돈도 더 받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비록 학교까지 등하교 거리는 멀어졌지만, 이쪽에 사는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새로운 재미도 생겼다. 사실 이사 오자마자 자전거를 두 대나 도둑맞았는데 규수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아빠가 규수 마음에 쏙 드는 자전거를 새로 사준 것. 둘째 아들 지용이는 샛별초로 전학 왔는데 학교 시설도 좋고 친구들이 착해서 마음에 든단다. 사교성 좋은 그의 아내도 금세 적응을 해 벌써 동네 친구를 만들었다. ‘사랑으로’ 아파트에 사는 씩씩하고 활달한 애기 엄마들이 자주 놀러 온다고.


제일 좋은 점은 마당이 있다는 사실. 마당에서 배드민턴을 치는 일은 이곳에 와서 생긴 가장 큰 즐거움이다. 엄마, 아빠, 동생이랑 저녁마다 배드민턴을 치다 보니 규수 배가 쏙 들어갔다. 구룡산 자락이 바로 뒤에 있어선지 여러 동물들도 심심치 않게 봤다. 봄에는 엄지손톱만한 애기 두꺼비가, 여름에는 맹꽁이가 나왔다. 배가 볼록한 맹꽁이가 귀여워 만져보고 싶었지만 해가 될까 눈으로만 구경했다. 머리 깃이 솟아오른 알록달록한 후투티도 날아왔다. 도마뱀, 청설모, 족제비, 도롱뇽, 무서운 뱀도 보였다. 도심 속의 시골이랄까? 아직 자리를 못 잡아 경제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가족 모두 만족스럽다.

내년엔 경제적으로도 자리가 잡혔으면 좋겠다는 주인의 말에 집에 있는 정원이나 화분 ‘출장관리’를 해주는 건 어떠냐고 제안했다. 꽃에 나름 조예가 깊은 나에게도 필요한 서비스다. 긍정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주인의 말을 뒤로 하고 ‘앞으로 자주 들려야지’ 즐거운 마음으로 그 집을 나섰다.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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