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동 토박이 김수복, 신준자 씨 댁


오늘은 ‘상견례’ 하는 날

산남동 772번지, ‘아딸’이 있는 3층 건물의 주인이자 ‘아딸’을 운영하고 있는 동갑내기 부부 김수복, 신준자 씨(61세).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일요일 오전, 그들을 만나러 갔다. 1층은 ‘아딸’과 아직 비어 있는 상가가 있고, 2층은 전세 주고, 3층이 그들이 살고 있는 살림집이다.

3층으로 올라가기 전 ‘아딸’ 가게 문을 보니 이런 쪽지가 붙어 있다. “집안에 일이 있어 하루 쉽니다.” 손님이 오면 무슨 일이 있기에 가게 문을 다 닫았을까 궁금해 할 것 같다. 나는 그 이유를 이미 알고 있었다. 가게 때문에 늘 바쁜 그들이지만, 중요한 일이 있어 하루 가게를 닫을 거라고 했다. 오늘이 바로 하나뿐인 아들 평생 짝이 될 이의 부모를 만나는 ‘상견례’ 날이라고. 아들이 2대독자라 빨리 가정을 꾸렸으면 했는데 서른셋이 되도록 혼자라 걱정했다. 그런데 드디어 짝을 만나 혼인날을 잡게 된 것이다. 아들에게 짝이 생긴 것만 해도 좋은데, 요즘 아이답지 않게 수수한 옷차림이며 아들 말을 들자니 음식솜씨도 좋을 것 같은 며느리감은 그들 마음에도 흡족하다.


3층으로 올라가니 부부가 외출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185센티가 넘는 듬직해 보이는 아들은 벌써 사위 노릇 하려는지 미래의 장인 장모를 모시러 급히 나간다. 바쁜 시간을 쪼개준 그들 부부에게 감사하고 거실에 마주 앉아 집안을 둘러보았다. 곳곳에 놓여 있는 아기 사진이 가장 눈길을 끈다. 그들 부부는 딸(김수진, 35세), 아들(김우진, 33세) 남매를 두었는데 먼저 결혼한 딸이 낳은 아이들이라고. ‘아딸’을 해 보라고 권하고 초창기에 같이 일하기도 했던 딸은 지금 경찰 공무원인 사위와 천안에서 살고 있다. 아들 형제를 키우고 있는데 자주 친정에 다녀간다고. 자식, 사위, 손자 얘기를 하며 입이 벙싯 벌어지는 그들 부부를 보며 지극한 부모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옛날이 그리워요”

산남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수복 씨는 젊은 시절 한 때 빼곤 이 동네를 떠난 적이 없다. 지금 유일하게 남아있는 원흥이방죽 느티나무 옆 북서쪽으로 100미터 떨어진 곳에 부모님 집이, 법원자리에 장롱을 만들던 그의 공장과 집이 있었다. 공장이 잘될 땐 남부러울 게 없었지만, 어느 결에 다 털어먹고 그 뒤로 긴 세월 운전대를 잡고 살았다. 부인도 15년간 간병인을 하며 살림을 야무지게 꾸리고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얼마 전 그 운전대를 놓으면서 부인과 같이 시작한 가게가 바로 ‘아딸’이다.


산남동이 택지개발 되면서 보상을 받아 한 밑천 잡은 사람도 있지만, 땅이 별로 없던 그는 보상 받을 게 없었다. 그래도 고향을 떠나기 싫은 마음에 무리를 해서 이곳에 집을 짓고 가게를 열었는데 처음에는 사람을 두고 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됐다. 요즘에는 근처에 똑같은 체인점이 들어서면서 손님이 줄고, 안 좋은 해프닝도 종종 벌어진다. 손님이 전화로 주문해서 포장을 해 놓으면 찾으러 오질 않는다. 알고 보니 주문은 이쪽에 해놓고 저쪽으로 찾으러 갔더라고. 이런 소동은 같은 이름을 가진 가게가 한 동네에 두 개나 있기 때문이다. 멀지도 않은 거리에 또 가게를 내주는 체인점의 횡포에 항의도 해 봤지만 법대로 하라고 도리어 큰소리다. 1층 가게도 세 들어오겠다는 사람이 없어 마음이 심란하다.

옛날 산남동은 어땠냐는 질문에 그는 그리움을 토로했다.

“운전 끝나고 집에 오면 아내는 일 나가고 아이들은 학교 가고 아무도 없었어요. 그러면 대문 열려 있는 이웃집 아무데나 놀러 가서 때 되면 밥 먹고 하루 종일 놀다 오고 그랬어요.

집은 허름하고 동네 길은 장화를 신고 다녀야 될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그래도 그때가 좋았어요. 인심이 좋아 사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돈’이 뭔지 개발이 되고 보상을 받으면서 형제간에 갈등이 생긴 집도 꽤 된단다. 정답던 이웃들도 여기저기 뿔뿔이 흩어지고, 부모님도 수곡동으로 이사를 갔는데 땅 힘을 못 받아선지 얼마 못가 돌아가셨다. 이제는 친구들을 만나도 은근히 ‘돈 자랑’을 해대 재미가 없다. 이래저래 그에게는 개발 되서 좋은 것보다 안 좋은 게 더 많다. 그래도 세월을 되돌릴 순 없지 않은가.

“산남동 사람들이 다 잘 됐으면 좋겠어요. 얼른 경기가 풀려 형편도 피고, 다시 사람 사는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그런 동네가 됐으면 좋겠어요.”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