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리슈빌 104동 박경미. 정재우 씨 댁

막내아들 규빈(산남유치원6세)-다섯째, 아들 묵(중2)-셋째, 부인 박경미 (48세)씨 가족 

“저 집은 대식구예요. 식구가 일곱이나 되요.”

우연히 마을신문 회식자리에서 만나게 된 정재우(52세) 씨. 그를 잘 아는 사람이 하는 말에 처음에는 그저 단순히 부모님과 함께 사나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고 자녀가 다섯이나 된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였다. 아니, 자녀수가 부의 척도라는 요즘 세상에 다섯씩이나? 진짜 부자네. 그런 집에 가보면 재미있겠다. 난감해하는 그를 조르고 졸라 부인의 허락까지 받은 후, 그 집에 갈 수 있었다.

식구수를 말해 주듯 조르르 늘어서 있는 여러 대의 자전거 (전실입구)

별을 볼 수 있는 옥상 테라스

그는 산남리슈빌 104동 꼭대기 층에 산다. 식구가 많아 복층구조를 원했는데 운 좋게 당첨됐다. 저녁 8시, 그의 퇴근 시간에 맞추느라 그랬지만 남의 집을 방문하기엔 다소 늦은 시간이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벨을 누르니 그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문을 열자마자 눈에 띄는 건 식구수를 말해 주듯 조르르 늘어서 있는 여러 대의 자전거다. 집에는 부인 박경미 (48세)씨와 중학교 2학년인 아들 묵(15세)이, 딸 보경(샛별초 6)이,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아들 규빈(6세)이가 같이 있었다. 외교관을 꿈꾸는 큰딸 예희(21세)는 서울 외삼촌댁에서 지내며 대학교에 다니느라 집에 없다. 대학생인 아들 동윤(20세)이는 공부하느라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12시는 돼야 오는데 그 시간에도 집에 오면 규빈이랑 위층에서 한바탕 축구를 한단다. 그 말을 듣고 위층에도 꼭 올라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안에서 축구를 할 수 있다니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천정이 비스듬한 또 하나의 집이 나온다. 아래층과 별개로 느껴지는 독립된 공간이다. 이정도면 놀이삼아 가볍게 축구도 할 만하겠다. 이층까지 급하게 치우느라 안주인은 고생했지만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가본 옥상 테라스는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바닥에 마루를 깔고 벽에 나무로 울타리를 짜놨는데 여기서 삼겹살 구워 먹으면 딱 좋겠다. 더운 여름날엔 여기에다 모기장 치고 자면 시원하니 별도 볼 수 있겠다. 부러워라. 그런데 지금 이 집에선 아직 막내가 어려 장난치다 위험한 일이 생길까봐 이곳에 잘 안 나온단다.

부엌 식탁에 모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누고 있다.

아이들은 하늘이 주신 선물

대충 집 구경을 끝내고 부엌 식탁에 모여앉아 오순도순 얘기를 나눴다.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말하는 중학생답지 않게 순해 보이는 묵이랑, 아빠를 닮아 보조개가 쏙 들어가는 보경이가 부모와 자리를 같이 했다. 쌩떽쥐베리의 ‘어린 왕자’를 닮은 규빈이는 TV 속 ‘파워 레인져’에 푹 빠져 있다. 역시 오늘의 으뜸 화제는 단연 아이들이다. 어떻게 이렇게 많이 낳게 되었나 부터 시작해서 아이들 하나하나 특성까지.

“원래는 셋째까지 낳고 그만 낳으려고 했는데 하늘이 또 주셨어요. 그래서 운명으로 받아 들였죠. 키울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너무 감사해요.”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아이들을 돌보느라 한가할 틈이 없는 박경미 씨.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녀에게는 소중한 아이들이 있기에. 요리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앞으로 시간이 나면 요리학원에 다녀볼까 생각중이다. 하지만, 앞으로 아이를 더 낳을 생각이 있냐는 장난기 어린 질문에는 고개를 젓는다. 노산이라 막내 낳을 때 너무 위험해서 의사에게 주의를 받았다고.

자식 자랑은 팔불출 중에 하나라지만 그들은 아이들 자랑에 여념이 없다. 큰딸은 큰딸대로, 막내는 막내대로 다 사랑스럽고 다 나름대로 제 갈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옆에 앉아 있는 보경이는 암기력이 뛰어나고 성악에 소질이 있단다. 예전 피아노를 전공했던 엄마는 그런 딸에게 성악을 본격적으로 시키고 싶어 하는데 아빠는 음악 외에 공부도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눈치다.

▶막내딸 보경-넷째 (샛별초 6), 막내아들 규빈-다섯째 (산남유치원 6세)

마흔셋에 어렵게 낳은 막내 규빈이의 또 다른 이름은 ‘하늘’이다. 집에서는 “하늘아~”하고 부른다. 특이하게도 태몽을 형 묵이가 꿨다. 엄마 머리맡에 새가 알을 갖다 놨는데 알을 깨고 ‘파랑새’가 나왔단다. ‘하늘이 준 우리 집의 파랑새’인 규빈이는 온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평소에도 예뻐서 어쩔 줄 모르지만 밤이면 서로 데리고 자겠다고 쟁탈전이 벌어진다. 듣고 있노라니 나도 애 하나 더 낳고 싶다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아이들이 재산이라더니 맞는 말이다. 지금 나라에서는 저출산이 심각한 문제라는데 이 부부를 ‘아이낳기 홍보대사’로 임명하면 어떨까? 아이로 인해 더 행복해진 이들 가정 얘기를 들려주면 효과만점일 것 같은데.

“아이들이 많아서 좋은 점은 늙을 새가 없다는 거구요. 나쁜 점은 아래층에 사는 분들께 죄송하다는 거.”

아이들이 여럿이다 보니 소란스럽다. 큰 형이나 누나가 있으니 유치원 다니는 꼬마도 늦게까지 안자고 쿵쿵거린다. 입주 초기에는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친해져서 잘 지낸다.

어려울 수도 있는 자리인데 마음을 터놓으니 아이들 진로 문제, 시댁 얘기, 친정 얘기 등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아이들 다섯을 키우며 ‘도사’가 다된 부인에게 쉽게 ‘팥죽’ 끓이는 법도 배우고, 유머가 반쯤 섞인 그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되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듣다보니 어느덧 시계는 밤 10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사람이 좋고 이야기가 즐거우니 일어나기 싫지만, 가야 할 시간이다. 다음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는데 마음이 한없이 푸근하다. 아, 이래서 내가 또 살아갈 힘을 조금 더 얻는구나.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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