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사랑으로 108동 ‘나래헤어클럽’ 원장 이상필 씨댁


나는 동네에서 정육점이든 세탁소든 한번 거래를 트면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쭉 그곳을 이용한다. 소위 말하는 ‘단골’이 되는 것이다. 단골이 되면 단순히 물건이나 서비스가 돈과 만나는 게 아니라, 인간과 인간이 만나게 된다. 오랜 왕래 끝에 서로 얼굴을 익히게 되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정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이웃들이 많아지면 고단한 세상살이가 훨씬 살만하게 느껴진다. 산남동에 와서 인연을 맺은 정육점, 세탁소, 과일가게, 도서대여점 등 많은 단골집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더 마음 가는 곳이 있다.

내 단골 미용실인 산남 사랑으로 정문 옆에 있는 ‘나래헤어클럽’. 나에게 미용실은 단순히 머리만 예쁘게 만들어 주는 곳이 아니라, 가끔은 지나가다 들러 편안히 차 한 잔 마실 수 있는 휴식처기도 하고, 힘들 때 속내를 털어놓고 위안을 얻기도 하는 돈 안 드는 상담소 같은 곳이기도 하다. ‘나래헤어클럽’은 이런 나의 마음에 쏙 드는 미용실이다. 아니, 미용실이 아니라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필(39세) 원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동갑이라는 공감대도 한몫 했지만 결정적으로 꾸밈이 없고 누구에게나 허물없이 대하는 그녀의 시원시원한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 보는 눈은 다 비슷한지, 나 같은 단골이 꽤 되는 눈치다. 같이 일하는 언니도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 그녀는 인복도 많다.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요”

치장에 인색한 나는 가뭄에 콩 나듯 미용실을 찾지만, 어쩌다 한 번씩 가도 머리를 그녀에게 맡기고 친구처럼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나눈다. “나 요즘 밸리 댄스 배워요. 혹시 생각 있으면 같이 다니지?”, “태권도를 배우고 싶은데 우리 애들하고 같이 다닐까?”, “80세까지 건강하게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에요. 그래서 새벽에 수영 다녀요. 헬스도 하고. 몸무게는 그대론데 체력은 좋아지는 것 같아.”, “내가 여행 하는 걸 좋아해요. 아는 동생이 호주에서 미용실 하는데 나도 가고 싶어. 그래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팝송도 따라 부르고 자막 없이 나오는 영어방송도 보고. 근데 혼자 하려니까 힘드네.” 아니, 그 나이에도 그렇게 하고 싶은 게 많단 말이야? 일하느라고 바쁘고 힘들 텐데 그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지? 잠시도 가만있지 않고 삶을 즐기는 열정적인 그녀의 모습은 내 마음까지 생기 있게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산남푸르지오’ 아파트를 팔고 ‘산남사랑으로’ 아파트로 이사를 했단다. 아니 왜? 궁금함도 풀 겸 그녀에게 집 구경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아무래도 아이들 학교나 미용실하고 가까운 곳으로 옮기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집 팔고 남은 돈으로 투자도 좀 해볼까 했지. 그런데 대출 갚고 나니까 별로 남는 게 없어서 투자는 못했는데 아이들은 학교 옆으로 이사 와서 너무 좋대요. 지금은 매일 집에 친구들 데려오고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어요.”

 다정한 부부, 아늑한 보금자리


그녀의 새로운 보금자리 - 산남사랑으로 108동. 오전 11시쯤, 같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마침 그녀의 남편(유만복, 43세)이 막 집에서 나가려던 참이었다. 호남형으로 성실해 보이는 그는 벽지, 커텐을 취급하는 작은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출, 퇴근 시간이 자유롭다. 엄마성격을 닮은 씩씩한 딸 지혜(샛별초 4학년)는 학교에 가고 7살 된 아들 영권이는 유치원 가고 없다. 여기에 딸네 집을 수시로 드나들며 살림을 거들어주는 친정엄마도 있는데 지금은 아픈 무릎 치료하러 병원에 가셨다. 그녀가 결혼해서도 계속 일을 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엄마 덕분이다. 엄마의 뒷바라지가 없었더라면 그녀가 이렇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살기는 어려웠을 거란다.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되는데, 연세가 들어 자꾸 아픈 데가 늘어나 걱정이다.


이사 오면서 벽지를 새로 바른 집안은 신혼집인 듯 밝고 환하다. 아담하니 짜임새 있는 공간이 포근해 보인다. 남편이 커텐 취급하는 일을 한다는 소리를 들어선지 우아해 보이는 커텐으로 자꾸 눈길이 간다. 나도 아직 커텐 안 했는데. 짐이 별로 없어 큰 집에서 작은 집으로 옮기면서도 하나도 힘들지 않았단다. 부엌 베란다에 수납하기 좋도록 짠 선반은 남편 솜씨라고 은근히 자랑이다. 마주보는 눈길이 참 다정해 보이는 부부였다. 염치불구하고 안방 침실에도 살짝 들어가 봤는데 침대 머리맡에 걸린 결혼사진을 보자 푸하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녀가 결혼 전에 이렇게 푸짐했단 말야? 70킬로가 넘어 ‘코알라’ 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남들은 아줌마가 되면 살이 찌는데 그녀는 오히려 아이를 낳으며 살이 빠졌다.


그녀가 1년 동안 밸리 댄스를 배웠다는 말을 듣고 옷 좀 보여 달라고 했더니 거금을 들여 산 무대용 댄스복을 꺼내 가지고 나왔다. 은근히 화려한 베이지색 무대의상을 보고 입어보라고 부추겼더니 선뜻 갈아 입었다. 음~ 역시 섹시하군. 혹시 이 사진 외설스럽다고 마을신문 편집실에서 잘리는 건 아니겠지?

언제나 활기차고 당당한 그녀, 그녀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글 김말숙, 사진 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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