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구 통장협의회장을 만나다


지난 10월 산남동 통장협의회장이 선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36명 통장들의 직접선거로 세 명 중 압도적(?) 표차로 당선 되었다. 이광구 통장이다. 산남3지구 주택가 통장이다. 이광구회장은 어린 시절 반장경험 이외에 살아가면서 투표대상자가 된적이 첨이란다.


원흥이방죽을 거닐며 시작된 인터뷰의 시작은 작년 말(2008년) ‘엽연초생산협동조합’전무이사직을 명퇴하면서 그 해 4월 20일 통장 임명을 받았던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우연히 민원 때문에 주민센터를 방문했다가 통장 제의를 받았어요. 동네일에 관심과 미련있고 해서...” 말끝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것은 고향 ‘산남동’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이회장의 고향이 바로 개발되기 전 산남동 두꺼비마을이다.


“고향마을을 파헤치는 중장비들을 보면서 마치 점령군이 밀고 들어오던 느낌이었습니다. 선산이 구룡산에 있고 태어나서 자란 곳이 바로 이곳이었거든요. 어린 시절 지금의 산남고 뒤편 산으로 소 뜯기러 가면 절터에서나 보이던 기왓장이 많이 보였어요. 그곳이 한산이씨들 집성촌이었던 탑골 이었고, 원흥이방죽쪽은 원흥부락이라고 해서 광산 김씨가 많이 살았거든” 이회장은 공사 중이던 산남3지구를 자주 찾았다. 공사 시작 전 마을사진도 될 수 있는 한 모두 찍어놓았다. 고향에 대한 기억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라고 했다.


▶이광구 통장협의회장


퇴임 후 이광구 회장은 직장일을 할 때보다 더 바쁘다. 충대 평생교육원 다니면서 동양학강좌와 생활법률을 배우고, 영어회화에 컴퓨터까지 배우러 다닌다. 통장협의회장까지 맡았으니 이회장은 훨씬 더 바빠졌다.


“통장들이 주체가 되자고 했어요. 인생은 무전여행같은 것이니 기왕에 통장이 되었다면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자고도 했죠. 통장들도 주민센터에서 시키는 일만이 아니라 바른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광구회장과 인터뷰하면서 기존 통장들과는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택지역 주민들과 대화하고 싶어도 시간과 공간이 막혀서인지 타인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런게 없어 아쉽습니다. 이번에 노인들을 위한 치약 등이 들어있는 꾸러미를 전달해야 하는데 문이 잠겨있어 전달하기 어려웠습니다.”


통장일이 나름대로 보람 있는 일이라면서 “동네의 한 부분을 책임지는 사람들로서 주민센터에서 하지 못하는 일 맡아서 해야 합니다”고도 했다. 동민체육대회를 준비해야 한다는 바쁜걸음을 옮기면서 “통장의 존재가치와 품격 높이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는 끝말을 잊지 않았다.

 

이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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