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 리슈빌 103동 장옥경 씨댁

“소개하고 싶은 이웃이 있어요. 여장부라고나 할까? 손도 크고, 발도 넓고. 봉사활동도 많이 해요”
언제나 두꺼비마을신문에 소개할 이웃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내게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김병우 교육위원이 적극 추천한 장옥경 씨(43세). 샛별초에선 이미 유명인사다. 남자들도 하기 어려운 학교운영위원장을 3년째 맡아하며 애쓰고 있다.
겉치레 없고 알뜰하다, 인정이 많고 용기가 있다. 그녀를 아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음, 한번 보고 싶다. 그녀에 대해 호기심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커다란 솥 두 개, 냉장고 세 대


이미 그녀를 알고 있는 김은진, 신영 기자와 함께 산남 리슈빌 103동으로 갔다. 다른 집과 차별되는 오렌지색 컬러풀한 현관문이 산뜻하다. 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집안은 어수선하고 주인은 뭘 만드는지 주방에서 분주하다. 살짝 불안해진다. 자세히 인터뷰할 새도 없이 그녀가 다른 볼일 있다고 나갈까봐. 하지만 알고 보니 손님대접하려고 그리 바빴던 거다.

꼬마김밥에 잡채에 생과일주스까지 뚝딱~ 금세 한상 차려낸다. 직접 만든 무말랭이 반찬에 깻잎절임, 깻잎장아찌 까지 선뵈니 식탁에 한 가득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푸짐한 음식을 앞에 놓고 보니 이게 맛집인지, 이웃집탐방인지 헷갈린다. 에이, 괜히 아침 먹고 왔네.


워낙 음식 만들기와 대접하기를 좋아한단다. 다른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게 참 좋다고. 처녀시절 간호사를 하며 요리학원에 다녀 한식, 중식 요리사 자격증을 다 땄다.

그녀는 이런 솜씨를 살려 어렵던 시절에는 음식 만들어 주는 부업도 했다. 누가 잔치음식이나 밑반찬을 부탁하면 만들어 주고 수고비를 받았는데 수입이 꽤 짭짤했단다. 형편이 좋아진 지금은 반찬을 만들고 김치를 담가 봉사활동을 다닌다. 재활원과 노인복지관에 월 3, 4회씩 다니며 목욕봉사와 음식봉사를 한다. 그녀의 집에는 이럴 때 쓰는 커다란 솥이 두 개나 있고, 큰 냉장고도 세 대나 있다. 큰 솥에 200인분의 음식을 만들어 통에 담아 나른다. 이렇게 한 지 벌써 3년이 넘었다. 이제는 재활원에 갈 때 같이 가는 학교 어머니들도 생겼지만, 가끔 봉사활동에 열심인 그녀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세상 모든 신과 약속했어요. 아이를 가져 여자로서의 기쁨을 누리게 해 주신다면 나도 어떻게든 베풀며 살겠다고.”

사람 사이 ‘사랑’과 ‘신뢰’가 가장 중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사귄 동갑내기 남자친구랑 스물다섯에 결혼해 서른넷이 될 때까지 아이가 없었다. 여러 번 유산의 아픔을 겪고 9년 만에 어렵게 첫애를 얻었다. 또, ‘나한테는 얘 하나뿐인가 보다’ 포기할 즈음 둘째를 가졌다.

“큰 딸 경미(샛별초 3)는 부부를 화합하게 해주고, 둘째 아들 도영이(6세)는 돈을 벌게 해 준 것 같아요. 아직도 가능하다면 더 낳고 싶은데 어렵겠지요?”

굴곡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마는, 파란만장했던 지난날을 거침없이 솔직히 털어놓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 팔에 소름을 여러 번 돋게 했다. 참, 대단한 사람이구나.

“사업이 망해 큰 빚을 지고 이혼할 뻔한 시절이 있어요. 다행히 무사히 잘 넘어갔지만, 내가 밑바닥까지 떨어져 봐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고 싶지 않아요. 겸손하게, 내가 조금 밑지더라도 남들 피해 안주며 살고 싶어요. 살아보니 내가 알뜰하게만 살면 돈은 큰 문제가 안돼요. 사랑만 있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어요. 사람 사이의 신뢰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녀는 사람을 제일 중요하게 여긴다. 나누며 사는 것도, 나 자신보다 주위를 더 돌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 속에서 아이들이 바르게 잘 자랄 거라고 믿는다.

통 큰 여자, 많은 아픔을 겪었던 여자, 남에게 퍼주길 좋아하는 그녀를 만나고 나오며 그녀가 챙겨준 반찬과 산삼주(?)로 불룩해진 가방만큼이나 내 머리 속도 여러 가지 생각으로 복잡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내가 지금 힘들다고 하는 건 다 투정이구나.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김말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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