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남동 1038번지 남부은샘교회 강진국 목사 댁

“이번엔 강 목사님 댁 한번 가볼까요? 교회일 뿐만 아니라 사회 운동도 열심히 하세요. 민주화 운동에도 앞장서고 마을공동체를 위해서도 애 많이 쓰셨어요. 교회 안에서 사신대요.” 편집회의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섰다.
산남동 1038번지, 산남고 옆에 있는 ‘남부은샘교회’ - 이곳이 바로 강진국 목사(53세)의 보금자리다. 황토벽돌과 대리석이 어우러진 4층 건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듯 우뚝 솟아 있다.


아들도 목사의 길을 택해

갑자기 일이 생겨 구청에 간 그를 1층에 있는 ‘쉴만한 물가’라는 북 까페에서 잠시 기다리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갔다. 선하게 생긴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 3층에 있다는 집 구경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사무실에서 얘기를 나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과자와 나한테 잘해주는 예쁜 여선생님들 때문이었지요.”
웃으며 말하는 그를 보니 대하기 어려운 목사님이 아니라, 친근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 공무원인 아버지 때문에 고1 때까지 부모와 떨어져 살았던 그는 친절한 교회 선생님들 때문에 계속 교회에 다니게 되었고 신앙심이 깊어져 결국 목회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에 들어갔는데 거기에서 평생의 반려자도 만났다. 배려와 포용력으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선분 씨(53세). 그녀는 남편의 가장 큰 동역자요, 비판자다. 큰 틀은 남편이 짜고 세부계획은 부인이 세우고, 그들은 손발이 척척 맞는 하나님의 일꾼이다. 거기다 이제는 아들도 가세할 참이다. 군대 가려고 지금 휴학 중인 한별이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되려고 신학대에 갔다.


“아내는 조금 생각이 다른 모양이지만, 내가 잘못 살지는 않았구나 싶어 내심 뿌듯해요.”
큰 딸 슬기는 피아노 전공이고, 작은 딸 지은이는 사회복지학과에 다닌다. 자녀들이 다 큰 말썽 없이 잘 컸는데, 여기에는 대화와 여행이 큰 몫을 차지했다. 지금도 다 같이 가족여행을 다니는데, 올 여름에는 강원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오고 가는 차안에서 서로 속내도 털어놓고 추억을 쌓았다.
청소를 못했다며 난색을 표하는 부인을 졸라 3층에 있는 살림집도 구경했는데 목사님 집도 여느 집과 다를게 없었다. 거실에 빨래도 걸려 있고, 책상위에 책도 널려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그런데, 아버님과 세 자녀가 함께 쓰기에는 좁아서 조만간 집을 옮길 예정이란다. 교회 앞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을 거라고.

사회 구원에도 힘써

그는 종교인으로서 개인구원뿐 아니라 사회구원에도 힘써야 된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종교활동 외에도 사회 참여 활동을 많이 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오창에서 마을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직거래장터를 시도했다. '유기농'이라는 말조차 생소할 때 유기농을 시작해 생산자조합을 만들고 도시 소비자들과 연결해 준 것이다. 이것이 지금의 YWCA 생활협동조합의 시초라 할 수 있다. 90년대에는 부모가 들에 나가면 방치되다시피 하는 농촌 아이들을 위해 해직교사들과 손을 잡고 '농번기 탁아소'를 만들었다. 요즘은 여러 곳에 '지역아동센터'가 생겼는데 그때는 그렇게 아이들을 돌봐주는 곳이 없었을 때다. 나중에는 청주 시내에도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었다.

지역공동체를 위한 그의 이런 활동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부은샘교회에서 문화센터를 열고 여러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여기에는 단지 선교활동뿐만 아니라 다 같이 잘사는 사회를 꿈꾸는 그의 바램이 담겨 있다. 올 12월 부터는 ‘비젼스쿨’을 만들어 영어캠프, 독서캠프를 할 계획이다. 간혹 "교회에서 학원도 운영하냐?"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는 교육의 중요성을 알기에 바른 교육을 하고 싶은 것이다.


“나는 절대로 신앙을 강요하지 않아요. 교회 나오라고 잡아끌지 않습니다. 교회는 자신의 마음이 끌릴 때 오면 됩니다. 세계 리더 중에 왜 크리스천들이 많은 지 아십니까? 중심을 잡아주는 교육, 우리 아이들을 세계 리더로 만들고 싶습니다.”

열정에 찬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비록 교회를 안 다니지만, 우리 아들도 '비젼스쿨에 보내야 되지 않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김말숙 기자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