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에서 온 편지

바야흐로 선거의 계절이다. 요즘 같은 시기에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과연 투표가 가능할까 라는 점이다. 신체적 장애는 본인의 의사가 투표에 잘 반영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 제공과 환경적 조건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투표소가 2층에 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던가 투표소에 경사로가 없어 진입을 못한다던지 하는 불상사가 생기면 곤란할 것이다. 만약 그런 곳이 있다면 해당 투표소 직원이 업어서라도 투표장까지 안내해 줄 것이니 그리 걱정되진 않는다. 단지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발달장애인이 갖고 있는 제한점은 다르다.
지적, 자폐성 장애로 대표되는 발달장애는 물리적인 차원이 아니고 보다 인식적인 차원에서 투표의 가능 여부를 논한다. 후보가 누군지 인식은 하는 것인지, 표를 던진 후보가 자신의 이권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인물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릇 정치라는 것이 시민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지만 그만큼 계산적인 사안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을 판단하지 못하는 장애인이 투표에 참여한다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각자의 정치관과 인권감수성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다. 방금 투표를 마친 저 지적장애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몇 번을 찍었을까. 부모님이 알려줬을까 아니면 스스로 판단한 것일까. 저 사람의 투표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영향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 투표에 대한 의식도 부족한 사람이 왜 투표를 하러 오나. 말조차 통하지 않는 발달장애인과 투표장에서 만났다면 응당 할 수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애초에 현명한 투표라는 것은 환상에 가깝다. 1933년 독일은 온 세상을 지옥도로 몰고 간 나치당을 선출하였으며, 1987 년 대한민국도 힘겹게 얻어 낸 대통령 직선제로 또 한명의 군인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미국인에게 맡기기에는 너무 중요한 선거라는 미국 대통령선거도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이처럼 근현대사 중 세계 곳곳에서는 투표의 결과로 인해 위기에 몰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잘못된 역사가 초래된 것은 투표를 잘못해서가 아니라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껏 투표소를 찾은 장애인의 기능적 측면을 판단해 우려를 표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투표에 있어서는 참여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장애다. 대한민국 헌법 제24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 장애인도 투표 참여가 가능할까? 애초에 할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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