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에게는 딸내미가 둘 있다. 그러다보니 아이에 관련된 사건‧사고가 더욱 눈에 밟히고 잔상이 오래 남는다. 최근 증평의 한 아파트에서 세 살배기 딸과 40대 엄마가 세상을 등졌다. “남편이 그립고, 아이도 내가 데리고 가겠다.”라는 유서를 남긴 채. 사망한지 3달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다. 무엇이 그녀를 죽음으로 몰았을까? 기사를 살펴보고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그녀에게도 남편과 아이, 그리고 ‘임대’지만 집이 있었다. 문제는 남편의 벌이가 쉽지 않았다는 것. 그러다보니 여기저기 대출에, 카드 연체 등 해서 빚이 1억5천만원까지 늘어났다. 빚을 갚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거기에 딸도 태어났다. 생활비가 더 필요했다. 자녀지원금이 나오지만 그 걸로는 턱없다. 독촉장은 계속 날아오고, 술도 많이 마셨다. 다른 사람은 멀쩡히 잘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가 들었다. 자기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와 딸내미가 불쌍했다. 결국 남편은 작년 9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안하다. 생활이 어렵다”고 유서에 적었다. 그렇게 남겨진 그녀와 어린 딸. 바람 앞에 촛불이요, 폭풍우 속에 작은 배였다. 세상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다. 남편 명의 차량을 파는 과정에서 매수자에 의해 사기로 고소를 당했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그 즈음 돌아가셨다. 그렇게 그녀는 버틸 수 있는 임계점을 넘었고, 결국 삶을 포기했다. 딸내미도 데려갔다. 부모가 생존해도 어려운 판에 부모 없이 홀로 남겨진 아이의 인생은 뻔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생로병사’의 고통이 있다. 그리고 그 고통은 ‘무명(無明)’에서 온다. 그러므로 고통을 벗어나는 길은 그 고통의 근원을 밝게 비추어 보는 것이다. 그녀의 고통 속으로 들어가 보자. 여러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녀의 고통 중 제일은 ‘돈’이다. 수입은 적은데, 빚은 늘어났다. 그런데 수입이 적어도 그럭저럭 정부 보조금 등으로 해서 맞추면 살아갈 수 있다. 문제는 채무 ‘독촉’이다. 그 독촉이 사람 피를 말리게 한다. 어떻게 하면 빚의 독촉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날까?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 소위 ‘배째라’ 방법이다. 세상에는 빚이 많음에도 재산을 다 빼돌리고 차명으로 호화스럽게 살거나, 갚고 싶어도 돈이 없는데 어쩌라는 거냐며 소위 ‘배째라’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이 많다. 딱히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긴 하나, 죽는 것 보다는 낫다. 두 번째는 ‘빚을 없애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열심히 벌어서 빚을 줄여야 하지만, 벌어도, 벌어도 빚을 줄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경우에는 ‘파산’ 혹은 ‘회생’제도를 이용하면 된다.
 
 ‘개인회생파산’이란 쉽게 말하면, 과중한 채무를 겪는 개인 채무자에게 변제 능력이 없는 경우, 일정한 요건 하에 그 채무 전액을 탕감(파산)해주거나, 채무 중 일부만 3-5년 정도에 걸쳐서 변제하면 나머지 채무를 전부 면책(회생)해주는 제도이다. 그녀의 사정을 보아하니, 5년간 수입 중 매달 최저생계비(3인 가족 대략 150만원)를 제외한 돈(10만원 가량)만 5년에 걸쳐서 변제하면 채무 전부를 탕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는 가정에 수입이 거의 없다고 하면 파산신청을 해서 채무 전부를 면책 받을 수 있다. 채무면탈로서 악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위 제도가 바로 증평 그녀 같은 사람을 위한 제도이다.
 
 그녀는 ‘개인회생파산제도’가 있다는 것을, 그래서 그 제도를 이용하면 빚을 탕감 받고 새 출발할 수 있다는 점을 몰랐을까? 알았더라도 그 신청비용(대략 100만원 전후)이 없어서 못했을 수도 있다. 비용이 걱정이 된다면 법률구조공단을 찾아가던가, 아니면 변호사협회에 문의하면 의뢰인의 경제사정을 감안하여 거의 무료이거나 최소한의 비용으로 처리해주는 변호사를 찾아 연결시켜 준다. 정리하면 그녀는 ‘개인회생파산제도’ 자체를 몰랐거나,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제도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몰랐을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 그 제도와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그것을 알려주어야 하는가? 복지차원에서 국가가 좀 더 적극 알려주어야 하고, 지자체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는 충북변호사회에서 ‘공익인권이사’를 맡고 있다. 변호사회에서도 그런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지 못해 아쉽고 미안한 마음이다.
‘정보’는 공기와 같다. 필자는 직업상 숨 쉬는 공기처럼 아주 사소(?)하게 그런 내용을 안다. 그런데 증평 그녀에게는 그것이 목숨과도 같은 정보였으리라. “우린 답을 찾을 거야. 늘 그랬듯이” 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대사이다. 그러니 삶을 포기하지 말라. ‘답’은 분명히 있고, 그 답을 찾을 ‘방법’도 있다. 단지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일 뿐.
▲ 최우식 변호사(사람&사람 / 충북지방변호사회 공익인권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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