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통시장의 향수 느낄 수 있는 30여개 점포, 10여 년 째 場 열려

‘진리의 길’ 목요장터

“구경 한번 와 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화개장터!~
……
오시면 모두 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 받는
경상도 전라도의 화개장터”

 조영남이 불러 널리 알려진 화개장터 노랫말이다. ‘있어야 할 건 다 있고 없을 건 없다니….’ 시장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50, 60대를 바라보는 이들에게 ‘전통시장’이라는 말은 어릴 적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매개체다. 엄마 손 잡고 따라가 본 5일장. 반듯한 가판이나 포장지는 없었다. 농산물도 드문드문 벌레가 파먹은 흔적이 있는 것이 영 못난이다. 어르신들이 직접 재배한 오이며, 가지, 고추, 갖가지 나물, 사과, 배를 늘어놓고 양도 그냥 대충 대충, 눈대중으로 가늠하거나 한주먹 또는 두 주먹, 기분 내키면 더 줄 수도 있다. 흙도 제대로 털지 않아 얼핏 보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모두 정성들여 키운 실한 것들이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풍성한 먹거리들은 또 어떻고, 가끔은 돈 몇 푼에 언성을 높이고 실랑이 벌이는 장면도 목격하지만 이 또한 옛 전통시장에서만 볼 수 있는 매력이자 재미였다. 전통시장은 분명 복잡하고 정신없었지만 사람간의 정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는 대형마트에서는 볼 수 없는 아련한 풍경이기도 하다.
비록 어릴 적 엄마 손 잡고 갔던 그때 그 시절의 시장을 다시 만나볼 수는 없지만 전통시장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 수 있는 場(장)이 우리 동네에서도 매주 열리고 있다. 현진에버빌과 계룡리슈빌 아파트 사이 골목, 일명 ‘진리의 길’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열리는 목요장터다. 벌써 10년째라니 놀랍다.

‘진리의 길’에서 매주 목요장터 열려
현진의 ‘진’, 리슈빌의 ‘리’를 합쳐 이름붙인 ‘진리의 길’에는 매주 목요일마다 場(장)이 열린다. 아파트 시장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상추, 고추, 오이 등 갖가지 채소를 비롯해 포도, 복숭아 등 제철과일, 양말이나 속옷, 선뜻 사기는 꺼리지는 반짝이 옷까지. 시장하면 빼놓을 수 없는 떡볶이, 순대, 튀김, 돈가스에 직접 양념한 갈비구이, 내장탕, 도가니설농탕, 추어탕 등 집에서는 끓이기 힘든 각종 탕 종류, 만원이면 대여섯 가지 반찬을 한보따리 가져갈 수 있는, 누가 봐도 손색없는 ‘전통시장’이다. “○○ 주세요~” 뭐든 말만 하면 다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꼭 사지 않아도 좋다.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10년 전 지금의 LG전자 부지에서 처음 시작한 場은 6년 전 진리의 길로 이사 왔다. 처음엔 20여명의 주인장들이 모여 시장을 열다가 지금은 30여명으로 늘었다. 장사해서 번 돈으로 아들 딸 시집장가 다 보냈다는 채소가게 사장님, 온갖 정성 다 들여 자식처럼 키운 과일을 내다 팔고 있다는 과일가게 사장님, 우산이면 우산, 캐리어면 캐리어 못 고치는 게 없다는 ‘산남동 맥가이버’ 구두병원 사장님. 주인장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도 지난 10년 동안 차곡차곡 쌓였다. 목요장터를 이끌고 있는 대양유통의 정병기 대표는 “산남동 목요장터는 청주의 웬만한 전통시장 못지않다. 종류도 많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고 말했다. 

▲ 목요장터가 열리는 ‘진리의 길’. ‘진리의 길’은 산남현진에버빌아파트의 ‘진’과 산남계룡리슈빌 아파트의 ‘리’를 따서 작명된 거리로서, 현진에버빌과 산남계룡리슈빌 공동 소유지이다.

넉넉한 인심과 풍성함 느낄 수 있어
목요장터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점포는 일명 ‘탕’집이다. 옛날 무쇠솥만한 큰 솥단지에 직접 끓이는 탕 종류만 6가지가 넘는다. 내장탕, 추어탕, 갈비탕 등 솥단지마다 펄펄 끓고 있는 국물 맛은 과연 어떨까? 한 숟가락 맛본 국물 맛은 그야말로 끝내준다. 주인장 조인수 씨는 “손님이 직접 보는 자리에서 끓이기 때문에 고객들이 믿고 사 가신다”며 “재료를 속이지 않고 넉넉하게 넣는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으로 요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약방에 감초가 있다면 목요장터엔 떡볶이집이 있다. 시뻘건 고추장에 버무린 떡볶이 1인분에 바삭한 튀김 한 접시면 임금님 수라상이 부럽지 않다. 특히 파, 무, 게, 다시마 등 천연재료로 맛을 낸 ‘어묵국물’은 지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쉼’을 제공한다.
목요장터의 터줏대감이자 산남동 맥가이버로 통하는 조병한 씨는 청주에서 유일하게 아파트 장에만 다니는 자타공인 ‘구두장인’이다. 산남동을 포함해 청주지역 아파트 7곳을 매일 번갈아 다니는 조병한 씨는 이사 간 사람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솜씨가 좋다. 20여 년 전 IMF구제금융 시기, 벼랑 끝에 몰려 어쩔 수 없이 남의 구두를 만지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단골손님들이 믿어주고, 알아주니 뿌듯하단다.
추석을 맞아 한창 분주한 떡집 ‘창대방앗간’의 김유갑 씨도 직접 뜯은 쑥으로 만든 쑥인절미, 농사지어 만든 단호박백설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요즘엔 전통시장이라고 해서 자신이 직접 키운 농산물을 파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도매상에서 물건을 받아 온다. 그래서 목요장터 과일가게 주인장에게 더 눈길이 간다. 우선영 씨는 본인이 직접 키운 과일을 팔고 있단다. 중간에 도매상이 없으니 가격이 저렴한 것은 당연하다. 물건 좋고 가격 싸니 손님 입장에선 시쳇말로 ‘득템’이 아닐 수 없다.
‘시장이 다 뭐 거기서 거기지~’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구두병원부터 떡볶이 집까지 300여 미터에 이르는 목요장터 주인장들은 무려 10년째 한결같이 넉넉한 미소로 산남동 주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만남이지만 10년째라니, 분명 예사롭지 않은 인연이다. 다음 주 열리는 목요장터에선 주인장에게 먼저 다정하게 말 한마디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10년째 산남동에 와줘서 고맙습니다.”라고.

▲ 정병기 목요장터 대표와 장터 사람들

저작권자 © 두꺼비마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