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선경(청주교대 교수/ (사)두꺼비친구들 이사) 

  지난 5월 22일은 ‘국제 생물다양성의 날’이었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지방정부 네트워크인 이클레이 한국사무소에서는 6월초까지 ‘우리 동네 생물다양성 찾아보기’ #SNS이벤트를 진행한다고 공지하면서 각자가 살고 있는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홍보할 수 있는 사진을 찍어서 올려주기를 요청하였다. 지역의 생물다양성은 지속가능성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따라서 주변의 생물다양성을 살피고 지키는 것은 곧 지속가능성의 토대를 쌓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5년부터 국제사회가 합의하고 노력을 약속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들 중 15번째 목표는 육상생태계를 보호하는 것이며, 이 중 생물다양성 보전은 핵심이다. 실제로 생물다양성 보전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생물다양성을 보전하는 문제는 흔히 사람들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다른 많은 쟁점과 얽혀 있어서 한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쉽게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청주 지역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었던 백로의 서식지 문제를 생각해 보자.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무심천변에서 왜가리나 중대백로 같은 백로류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또는 무심천변을 걷다가 회색 몸과 검은 댕기머리를 가진 왜가리나 하얀 몸을 가진 중대백로 등을 찾아내는 건 즐거운 일 중의 하나였다. 예전에는 오염된 하천이었던 것이 이만큼 살아났다는 증거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던 2012년 어느 날, 청주 남중과 청주교대 뒤의 잠두봉 근처에 왜가리와 쇠백로, 중대백로 등 백로류가 날아들기 시작하더니 그 수가 늘기 시작했다. 잠두봉에는 백로류가 둥지를 만들기에 적합한 소나무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먹이활동을 하기에 적절한 무심천도 가까워 집단적으로 서식하기에 적절하기 때문이었다.

2013년 청주교대 부설 영재교육원에서는 2박3일의 여름 캠프 주제로 이러한 백로류의 서식지를 보전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주제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도록 하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게 관련 주제를 중심으로 탐구를 수행하였다. 어떤 아이들은 잠두봉 부근을 돌아다니며 배설물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관찰하여 나무에의 피해를 가늠하기도 하였고, 소음측정기를 들고 잠두봉 근처와 조금 떨어진 곳, 인가 주변 등에서 소음을 측정하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아이들은 배설물이 토양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서 토양의 산성도와 유기물의 양을 측정하기도 하였다. 주변 인가를 방문하여 소음이나 냄새로 인한 피해나 불편을 인터뷰하기도 하였다. 결국 아이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그래도 함께 견디면서 살만하다는 결론을 내기도 하고 또 피해가 크니 다른 곳으로 옮겨가게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어떻게 어디로 옮겨가게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조심스럽게 이런 저런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 탐구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이 백로들이 무심천과 미호천의 합류지점인 송절동 지역이 청주테크노폴리스 조성사업이 진행되고 이 지역이 개발되는 과정에서 서식지를 잃게 되어 옮겨온 것임을 알 수 있었으며, 생물다양성의 문제가 어떤 과학적 탐구와 의사소통, 나아가 의사결정을 필요로 하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는 실제로 우리 삶과 어떻게 얽혀있는지에 대해서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백로와 함께 사는 정말 아름다운 청주를 만들고 싶은 건 잘못된 욕심일까?"

 
오래지 않아 이러한 의사결정을 실제로 해야 할 날이 바로 다가왔다. 2014년을 거치면서 점차 늘어난 백로류의 수가 2015년에 이르러서는 남중의 교육활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것이다. 깃털은 식당 부근의 창에 달라붙어 있어 언제 음식에 들어올지 모르고, 음악 시간에는 시끄러워서 수업을 하기 어렵고, 배설물은 여기 저기 떨어져 악취를 유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여름은 가까워오는데 문을 열 수는 없고... 남중 학생들의 학부모님들은 항의를 하고, 환경단체와 환경에 관심있는 교수들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보자고 중재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청주교대의 교수들은 이 백로의 서식지를 교육적 자원으로 이용하게 되면 과학적 탐구는 물론이고 학생들에게 타자를 배려하는 윤리교육도 가능하니 한 번 해 보자고 제안도 하였다. 2013년 영재교육원의 학생들은 이런 저런 실험과 탐구를 통해 문제의 심각성을 진단해 보고, 그 결과에 근거하여 조심스러운 주장을 펼쳤지만, 실제 2015년의 어른들은 막무가내 소나무를 잘라서 백로들이 서식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학생들의 등교 거부로 이어졌다. 제발 새끼들이 자라나서 날아갈 수 있도록 9월말까지만이라도 간벌을 미뤄달라는 바램에도 불구하고 결국 9월 2일 나무는 잘려나갔다. 당시 연구년 때문에 8월 중순에 출국을 해야 했던 필자는 새벽에 과학과 교수님으로부터 ‘지금 잠두봉에서 소나무가 잘려나가고 있어요... 아직 새끼들이 남아있는데...’ 하는 문자를 받고 잠이 깨었다.

이후 쫒겨난 백로들은 서원대 뒷산으로 옮겨가 자리를 잡았다가 다시 쫒겨나 새로운 서식지를 찾아 헤매고 있다. 백로들은 이제 어디서 자리를 잡아야 또 쫗겨나지 않을까 ? 이렇게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백로의 새끼는 지키지 못하는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도 지속가능한 청주, 지속가능한 미래는 가능할까 ? 원흥이 방죽을 지켜서 산남동이 정말 근사한 마을이 된 것처럼, 백로와 함께 사는 정말 아름다운 청주를 만들고 싶은 건 잘못 된 욕심일까 ? 실제 주변의 두꺼비나 백로나 생물다양성을 지키는 일을 탐구하고 모니터링하는 시민과학자들이 활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저 희망사항에 불과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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