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정이 끝났다. TV조선의 특종보도로 시작된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는 JTBC의 ‘태블릿PC’ 보도로 그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어쩔 수 없이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했고, 결국 탄핵 당했다. 그리고 이어진 장미대선. 결과는 ‘문재인’으로 쉽게 예상되었지만, 대선 초기에 ‘안철수’가 대세를 역전시킨 적이 있었다. 갈 곳 잃은 보수표가 ‘안철수’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후로 ‘양자대결’ 구도로 가는 듯 보였으나 역시 ‘홍준표’였다. 특유의 ‘막말’로 진보-보수의 이념대결로 전환시켰고,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보수표가 홍준표로 몰리기 시작했고, ‘안철수’를 거의 따라잡기 시작했다. 초조해진 ‘안철수’는 무리수를 두었다. 그러나 오히려 역풍을 맞았다. 결국 ‘홍준표’에게 2위까지 넘겨주고 말았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갇힌 프레임은 소위 ‘친노-친문 패권주의’다. 구 여당인 새누리당은 물론이고 같은 당내에서도 ‘패권주의’라는 비판이 심심찮게 들려왔고 결국 ‘국민의당’의 분당으로까지 이어졌다. 본래 패권이란 ‘무력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자의 권력’이라는 뜻으로 강력한 군사력으로 세력을 확장하려던 미국과 소련 등 강대국의 외교노선을 중국 측이 비난하며 사용한 말이다. 그런 어원으로 비추어 보건대 ‘친노-친문 패권주의’라 함은 ‘주로 386운동권 출신들이 노무현 혹은 문재인을 중심으로 다수파가 되어 자신들의 주장을 절대시하고 관철시키며, 그 파벌에 속하지 않는 자는 무시하며 배제시키는 행태’라고 비난하는 측에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을 위시한 소위 민주당 ‘주류’는 ‘친문 패권주의’는 없다고 하나, 필자의 경험을 하나 소개한다. 
1991년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취업했다. 그런데 그 지점에는 대졸 출신 2년차 선배 2명이 있었는데, 소위 ‘운동권 출신’이었다. 그 당시는 회식이 많았는데, 회식 때마다 그 선배들의 단골메뉴는 대부분 ‘NL'이니 ‘PD’니 하는 이념적인 것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우리가 화염병 던질 때, 넌 뭐했냐? 우리나라가 민주화 된 것이 다 우리가 피 흘려서 쟁취한 거야. 고마운 줄 알아!”로 끝난다. 87년 민주항쟁 때 필자는 중학생이었는데, “그래서 뭐 어쩌라고!” 무시당하는 기분이었다. 그 해 은행을 그만 두고 대입 공부를 했다. 그런데 그것이 결론적으로는 은행을 평생직장으로 알던 필자를 지금의 이 길로 오게 만든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으니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하여간 운동권 출신들은 소위 ‘꼰대’ 기질이 좀 있다. 그런 것이 ‘패권주의’의 근원인 듯하다.
그런데 그러한 ‘패권의식’은 사실 우리사회에 크고 작게 어디에나 있다. ‘영남패권주의’로 상징되는 ‘지역주의’, 특정 학교 출신들의 ‘학연주의’ 등등. 문재인을 그렇게 비난하는 새누리당도 결국은 ‘친박’ 중심의 ‘패권세력’ 아니었던가? 그런 이유로 문재인에 대한 ‘패권주의’ 올가미는 크게 약발을 받지 못했고 대세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지난 4월 23일 TV 합동토론회에서 ‘대선자금’이니 ‘주적’이니 하면서 과거를 논하지 말고, ‘미래’를 말하자고 하면서 안철수가 느닷없이 문재인을 항해 날린 말이다. 문재인의 네거티브 공세를 들춰내려는 공격적 발언이었으나 그것이 결국에는 안 후보의 최대 패착이 되었고, 이후 ‘이명박 아바타’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 장면을 본 상당수 국민들이 ‘새정치’를 기대했던 안철수에 대하여  많은 실망을 하였고, 지지를 거두면서 많은 표가 홍준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상대 네거티브를 지적해 국민들의 지지를 얻으려 '셀프 디스'한 것이 그야말로 안철수에겐 독약이 된 셈이다. 이후로 안철수는 선거 전략을 비전제시로 변경했으나 '갑철수' 이미지를 넘지 못했다.

단순히 그런 네거티브 방식에 대한 이의제기는 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말고 미래를 논하자고 말해놓고 바로 그런 말을 하다니. 다른 사람도 아니고 ‘새정치’를 들고 나온 안철수가 왜 그런 구태의 모습을 보이니 어이가 없었다. 안철수 개인의 생각의 짧음인지, 선거캠프의 무지의 소산인지 추후 ‘선거백서’를 만든다고 하니 이 점은 분명히 밝혀져야 할 듯하다.   

보수는 부패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패권주의’는 그 정도의 문제일 뿐, 어디에나 있다. 분열된 진보를 하나로 묶는 것과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60%의 국민도 떠안는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 ‘패권주의’를 돌파하는 방법일 것이다.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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