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성직자가 ‘단재교육상’을 수상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주인공은 청주 두꺼비마을 산남동 성당의 윤병훈 신부님. 신부님이 어떤 연유로 교육상을 받게 되었는지 궁금했다.

▲ 집무실에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고 있는 윤병훈 신부님(좌). 사진_이명주 기자

▲ 윤병훈 산남동성당 신부
▶조현국 편집장(이하 '편집장') : 제33회 충청북도 단재교육상 사도부문 대상을 받으셨습니다. 소감은 어떠십니까?

▶윤병훈 신부님(이하 '신부님') : 충청북도 ‘교육의 꽃’이라는 ‘단재교육상’을 받게 되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특히 제 고향인 충청북도에서 교육상을 받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제가 받은 단재교육상은 제 개인의 상이 아니라 그 동안 저를 도왔던 수많은 은인 분들, 후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돌리고 싶은 값진 상이라 생각합니다.

▶편집장 : 이번 수상은 이른바 ‘학교 밖 아이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양업고등학교’ 사역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공교육으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해 낮은 곳에서 그들의 삶에 젖어 들어 그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시게 된 배경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학교 설립 과정에서 인근 주민들과 갈등이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그런 어려운 국면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셨는지요?

▶신부님 : 제가 1995년에 교감 자격 연수를 하게 됐습니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학교 밖에서 10만 명의 학생들이 서성인다고 하는데 ‘학교 안의 학생’들도 중요하지만 ‘학교 밖의 학생’들을 위해 학교를 세운다면, 또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 생각은 저의 생각이기도 하지만 신앙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제로서 보았을 때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교육감을 찾아가서 “학교 밖의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세우겠습니다.”라고 말하자 교육감께서 흔쾌히 동의하고 전폭적으로 지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부적응 중도 탈락 퇴학생들을 위한 선도학교’라는 타이틀로 학교 건립 기사가 나가면서 학교 부지 마련에 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주민들의 반대로 학교 부지를 찾지 못하다가 마지막으로 옥산의 인도만 있는 시골구석에 있는 땅 천 평을 매입한 후 학교 부지를 공개적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자 옥산 주민들,;기관장들이 들고 일어나 연판장을 돌리며 반대를 시작했는데요, 저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아홉 번 만나고 기관장들도 아홉 번 만나고 또 개인적으로 만나고 대화하면서 갈등을 풀어나갔습니다. 학교가 공식적으로 첫 삽을 뜨기까지 2년 반의 시간이 필요했어요. 1997년에 설립 인가가 나고, 1998년 3월에 개교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너무나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편집장: 어려운 과정을 대화로 풀어나가 설립된 양업고등학교의 존재로 옥산 지역은 축복받은 곳이 되었습니다. 현재 양업고는 전국적으로도 나아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학교가 되었는데요, 그 비결은 무엇입니까?

▶신부님: 우리 교구는 처음에 학교의 운영을 스파르타식으로 할까, 아니면 완전 자유식으로 할까를 놓고 토론했습니다. 많은 신부님들은 철조망을 치고 경비를 삼엄하게 세우고 아이들을 감금하여 스파르타식으로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그러나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가정에서도 상처받고 학교에서도 ‘쓰레기’로 취급받고 버림받는 아이들을 위한 학교가 ‘수용소’ 식으로 지어진다는 것은 맞지 않으며, 선생님들이 힘들더라도 아이들한테 ‘자유’가 있는 행복한 학교를 만들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확신한 데는 불우한 청소년들을 ‘선택 이론’과 ‘현실 요법’으로 부정한 것으로 가득찬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성공한 윌리엄 글라서의 교육 이론과 사례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처음 그 아이들을 받아 안고서 교실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책과 연필과 노트를 잃어버린 아이들, 이미 머리 속에는 담배와 음주, 성의 오염, 약물의 오염 등 온갖 부정적인 것이 가득 찬 아이들한테 ‘교실’이라는 학교 공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담배만 피우고 기숙사에서 술만 마시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나무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머리 속에 입력된 경험의 세계가 그것을 계속 선택하도록 만든다는 선택 이론에 따르면, 부정적인 경험은 부정적인 선택을 끊임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그 나쁜 경험을 새로운 좋은 경험으로 완전히 바꾸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아이들에게 교실에서의 수업이 아니라 현장 체험, 버스를 타고 기차를 타고 배를 타고 걷기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자연을 만나고 세계를 만나는 그런 시도를 계속 하면서 그 아이들 머리 속을 좋은 경험으로 갈아 끼워주었습니다. 할 일을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담배만 피우는 아이들의 ‘현실’을 바꾸어주기 위해서 그 아이들을 데리고 지리산 3박 4일 종주, 다양한 봉사활동, 종교 활동, 전국을 누비는 현장 체험 학습, 세계 여행 등을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이 점차 치유가 되기 시작했고, 스스로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 되고, 그리고 아무 때나 잠자고 술판 벌리는 것이 자유가 아니라 3년 내지 5년 후에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는 목표를 세우고 힘들더라도 그 시간을 유용하게 쓰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것도 깨우쳐 나가더군요. 그 아이들이 졸업할 때 사흘 동안 새벽 4시까지 계속 사은회가 이어졌는데요, 그 시간은 치유의 시간, 감사의 시간, 서로 어울러져 잔치를 벌이는 축제의 시간이었어요. 그 아이들이 나가서 “양업고등학교 참 좋은 학교다”라고 홍보하고 다니면서 양업고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현재 양업고는 세계 교육자들이 주목하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제가 2013년 양업고 교장 정년퇴임할 때 권위 있는 윌리엄 글라서 학회에서 엄격한 심사를 거쳐 ‘좋은 학교’ 인증마크를 수여했고, 그해 개인적으로 포스코 청암교육상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에는 윌리엄 글라서 학회가 양업고에서 심포지엄을 주최했는데, 미국, 일본, 호주, 싱가폴, 유럽 등지에서 200여명의 교육학자들이 방문해서 극찬하고 돌아갔습니다. 외국의 교육자들이 찾아 올 정도로 양업고는 ‘좋은 학교’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편집장 : 신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양업고가 공교육의 국영수 중심의 지식교육에서 벗어난 새로운 교육의 지평을 연 것 같습니다. 경기도의 혁신학교, 공립형 대안고등학교, 충청북도의 행복씨앗학교의 시동을 걸어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지고요, 현재 시행되는 지식교과 중심이 아닌 인성교육, 체험학습 중심의 중학교 ‘자유학기제’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신부님께서는 ‘敎(가르침)’의 근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신부님 : 종교라는 것은 인생 문제이고 구원을 다루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태어났으며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구원을 가져다 줄 것인가 등등이 가장 본질적인 문제라는 거죠. 사람이 사람 되게 하는 것, 소질과 적성을 잘 계발해서 사회의 건강하고 행복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하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니 서로 통합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부여한 소질을 계발하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으니까요.

종교가 종교다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종교가 해야 할 본질적인 것을 놓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교육이 왜곡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면 인간이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또 소질과 적성을 꺼내지도 못하고 그냥 ‘국영수’에 의존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종교의 본질, 교육의 본질에 대해 늘 생각합니다. ‘수능’이라는 한 가지 수단이 목표가 되는 교육의 현실, ‘정신’이 목표가 아니라 ‘물질(물신)’이 목표가 되는 종교의 현실은 주객이 전도된 현실입니다. 이런 주객이 전도된 현실은 기계적인 인간만 양산시킵니다. 교육이 정말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자기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인성교육은 전혀 안 하고 지식교육만 하는 것은 ‘생명 가꾸기’에 위배됩니다. 저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가 좋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나 부모님들은 아이들을 가까이에서 보지도 않고 오래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종교와 교육의 목표는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행복의 가치를 ‘돈’에 두고 있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편집장 : 새해입니다. 온 세상에 깔린 어둠이 좀처럼 걷히지 않고 있습니다. 새해에는 온 국민이 마음 편하게 살고, 또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방법 없을까요?

▶신부님 : 교육이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 되면 ‘바른생활’을 배웁니다. 도덕을 배우기 시작하는데요, 지금 개인의 덕목이 어른들로부터 무너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어른들의 도덕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데 초등학생들이 무엇을 보고 정신적인 덕목을 배우겠습니까? 지금 우리사회는 선과 악이 뚜렷하지도 않고, 윤리성이 부재 상태입니다. 도덕의 개인적인 덕목이 무너졌습니다. 새해에는 어른들이 성숙했으면 좋겠고, 정말 정직했으면 좋겠고, 선과 악을 정확하게 구별했으면 좋겠습니다. 종교는 종교대로, 언론은 언론대로, 정부는 정부대로 또 각자의 위치에서 도덕성과 윤리성을 새롭게 정립하는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신부님께서 일군 ‘양업고’라는 이름은 ‘어질 양(良)’, ‘일 업(業)’자를 쓴다. ‘좋은 일을 하는 고등학교’라는 뜻인데,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님인 최양업 신부님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최양업 신부님은 최초로 오르간 반주를 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친 신부님으로서 우리나라에서 서양 근대 교육의 새 장을 연 분으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20세기 한국의 근대 교육의 문제점을 간파하고 그 교육 시스템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성공적으로 일구어 낸 윤병훈 신부님도 성직자로서 교사로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할 만하다.

창간 8주년을 맞는 두꺼비마을신문을 격려해달라고 하자 “산남동은 ‘산’ 남동이다. ‘산’ 남동이 될 수 있게, ‘죽은’ 남동이 되지 않도록 두꺼비마을신문이 빛과 소금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뼈 있는 유머어로 답해 주는 신부님. 이런 분이 우리 마을에 함께 있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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