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 지음, 『달팽이 안단테』

베일리에겐 병이 있다. 온 몸이 말을 듣지않는 아주 고통스러운 병이다. 의사들이 자신을 치료해줄것이라고 믿지만 병 앞에서 그녀는 두려움에 떨고있는 작은 생명체에 불과하다. 현대의학이 많이 발전했다지만, 아직까지도 암이나 희귀병으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만약 그런 지독한 병에 걸렸다면 하루하루가 슬프고 처참했을것이다. 온 몸이 굳은 상태에서 '언제 죽을까, 그냥 죽는게 나을 지도 몰라' 하면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것같다. 하지만 베일리는 달랐다.

친구가 가져온 제비꽃 속에서 달팽이가 나왔다. 처음엔 눈길조차 주지않았다. 달팽이 따위에게 시간을 낭비하기엔 자신에게 있는 시간이 얼마 남아있지 않을것만 같았다. 지금 이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전기스탠드 옆에 놓은 편지봉투에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지난 저녁 달팽이가 요리조리 움직이던 모습이 생각났다. 그닥 빠른 몸놀림은 아니었지만 달팽이는 조금식 편지봉투를 뜯어 먹은것이었다. 다음날, 베일리는 달팽이에게 시든 꽃 몇송이를 주었다. 달팽이가 먹으면서 내는 정겨운 소리는 자신에게 특별한 동무와 공간을 함께 쓰고있다는 느낌을 안겨주었다. 때론 우리에겐 우연한 일이 찾아온다. 베일리에겐 달팽이를 만남으로써 삶이 특별해진 것이다. 드라마나 영화에만 나올법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라는 사실에 놀라면서 다음책장을 넘겼다.

그날부터 베일리의 삶은 특별해진다. 달팽이에 대해 찾아보고, 달팽이를 관찰한다. 자신이 보았던 조그만 달팽이가 엄마 달팽이가 되고, 대를 이어간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그러던 사이에 베일리의 상태도 조금씩 호전되어간다. 다행이었다. 끝은 또다른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처음 달팽이와의 이별은 힘들었지만 달팽이가 남기고간 아기 달팽이 때문에 베일리는 힘을 얻고있는 것 같다.

지긋지긋한 병원에서 퇴원하고 다시 시골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신체적활동은 제한을 많이 받았지만 이제 더 이상 침대에만 누워있지 않아도 되었다. 몇 달이 지나고 탐스럽게 물들었던 빨갛고 노란 낙엽들이 떨어졌다. 베일리에게 홀로 남은 새끼 달팽이는 훌륭한 동반자가 되었다, 이 병을 앓은 지 15년이 되었지만 그동안 육상달팽이와 함께 했던 시간이 마치 어제있었던 일처럼 생생하다. 삶을 포기한 순간 우연히 만난 달팽이는 베일리의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이유가 되었다.

베일리의 이야기는 나에게 잔잔한 여운과 또 다른 고민을 안겨주었다. 날이 가면 갈수록 동물과 환경에 관한 문제는 수그러들기는 커녕 계속해서 생겨난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나온 동물학대 장면을 보며 정말 화가나고 안타까웠다.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책에는 베일리와 달팽이가 공존하며 서로 교감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동물을 하나의 상품과 볼거리로만 생각하지 말고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꿔놓을 수 있을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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