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의 젊은 검사가 자살을 택했다. 필자는 그 친구(검사)를 안다. 사법연수원에 축구팀이 있는데, 필자가 40기, 그 친구가 41기여서 여러 번 같이 축구도 하고 뒷풀이도 해서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축구도 잘하고 인상도 좋고, 서울대 법대 출신에 연수원 성적도 좋은 걸로 알고 있는데, 왜 그랬을까?

그 친구는 2011년 연수원을 수료한 다음 법무관을 마치고 2015년 4월에 서울남부지검 형사부에 부임해서 가정폭력. 아동학대 사건을 주로 했다고 한다. 그를 아는 지인들은 “성격 활달하고 착한 치구”라고 기억한다. 그 친구는 자필로 두 장짜리 유서를 남겼다. “일이 너무 많다. 쉬고 싶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밀리기만 한다. 돌아오는 장기 사건들이 목을 조인다. 물건을 팔지 못하는 영업사원의 심정이다. 아픈데 병원에 가고 싶은데 병원 갈 시간이 없다. 탈출구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게 처음에는 그 원인이 업무과중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후 직장상사인 부장검사의 폭행, 폭언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그 친구는 2015년 경 검사로 임관을 한 뒤 직후부터 지속적인 부장검사의 폭언, 폭행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친구의 카톡 메시지를 보면 “여의도에 있는데 15분 안에 오라고 해서 갔더니 술에 취해 잘하라고 막 때린다. 맨날 욕먹으면서 진짜 한 번씩 자살 충동을 느낀다.”라고 하여 그 절박함이 느껴진다.

검찰 조직에는 '검사 동일체 원칙' 아래 엄격한 군대문화(상명하복)가 있다. 공소권을 행사할 때 검사 개인에 따라 좌우되지 않고 공정한 원칙을 적용하기 위해서 전체가 하나처럼 움직이는 팀워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직장상사인 부장검사가 후배 검사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일이 적지 않다. 이런 검찰 특유의 문화는 업무 이외의 사적 영역으로까지 확대된다. 술자리에서도 그런 문화는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 것이 새로운 세대의 검사들에게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또 검사들의 업무량은 지나치게 많다. 형사부 소속 검사 한 명이 맡는 사건이 한 달 평균 150~300건이다. 즉 하루 평균 10개 안팎의 사건을 처리하며 복잡한 사건은 하루 1건 처리하기 벅찬 경우도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책상에 앉아 괜히 경찰 수사 트집이나 잡고 연애나 하는 한가로운 모습이 아닌, 정말 피곤하고 바쁘고,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하는 힘들고 고된 직업이다.

그렇지만 어느 분야가 힘들지 않은 게 있고 어느 누가 힘들지 않겠는가? 또 직장상사의 폭력, 폭언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연히 그 부장검사는 잘하라는 차원에서 그리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그 친구를 막다른 곳까지 몰은 것인가?

자원은 ‘유한’하므로 사회는 본질적으로 ‘경쟁’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는 얼룩말을 잡아먹는다. 얼룩말은 죽을 힘을 다해 도망친다. 둘 다 살기 위해서다. 그것과 인간세상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좌절하지 마라.”고 배웠다. 살아남기 위해. 그 친구는 그 가르침에 모범적으로 따랐다. 그래서 우리 사회 최정점에 올라섰다. 그러다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졌다. 안타깝다. 그깟 ‘검사’ 포기하면 돼지, 나와서 변호사 하면 되는 될 것을 왜 포기하지 못하고 그렇게 해야만 했을까?

필자는 사법시험을 7년 동안 준비하면서 2차시험에서 세 번 떨어지고 네 번째에 붙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고, 좌절도 맛보았지만 참고 견딘 끝에 여기까지 왔다.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필자는 결혼을 하고 두 딸래미 아빠가 됐다. 아버지란 이유로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알게 됐다. 좌절해도 그리 슬퍼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까지 주로 성공하는 법, 포기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포기와 좌절은 실패자의 몫이라고 하면서...물론 어느 때에는 포기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 인생 전부를 놓고 보면 포기해야 할 때가 훨씬 더 많다. 좌절하지 않는 것보다는 제대로 슬퍼하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며칠 전에 중간에 끼어드는 차량이 있어 갑자기 ‘욱’해서 그냥 치고 나가려다, 나도 저런 적이 있어서 그냥 먼저 가라고 했다. 뭣이 중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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