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전에 김진주(가명)라는 고1 되는 여자아이가 찾아왔다. 누구를 고소하려고 하는데 도와달라고 한다. 진주 부모님은 어렸을 때 이혼했고, 진주는 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얼마 지나 새어머니가 들어왔다.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었다. 중1되는 나이에 진주는 집을 나왔다. 며칠 노숙을 전전하다가 우연히 30대 남자를 만나 그 남자 집에서 살게 됐다. 성폭행이 있었다. 그러나 진주는 감히 뛰쳐나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간들 어딜 갈 것이고,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집에 돌아가긴 죽어도 싫었다. 그나마 그 남자는 그 짓을 할 뿐, 그 외 폭행이나 폭언은 없었다. 끝나면 미안하다면서 사과도 했다. 그렇게 한 달, 그러다가 1주일 간격으로 성폭행 주기가 짧아지긴 했지만, 그 사과 하나로 자존심을 달래며 지내왔다. 분명한 건, 진주는 그 짓에 대하여 거부의사를 밝혔다는 것. 즉 아무리 그 남자 집에 얹혀살지만 ‘화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다 중2 나이에 임신을 했고, 중3 나이에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를 임신한 이후로 그 남자의 그 짓은 없었지만, 아이 출산 이후 잦은 싸움이 있어왔다. 폭행, 폭언도 늘어났다. 진주는 더 이상 같이 살 수가 없어 아이는 그 남자에게 맡기고 집을 나왔다.

 
을 나온 진주는 임시쉼터에 들어가, 중졸 검정고시도 치르고 이번에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 남자에 대한 고소는 몇몇 단체에 문의했는데, 지난 일이고 아이 아버지이기도 하니 다 잊고 살라고 했으나 진주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하여 서울의 상담기관을 통하여 소개를 받아 필자 사무실에 찾아온 것이다.
 
실 그 부분은 필자도 고민이다. 성폭행은 맞지만 지금은 아이아버지가 아닌가. 그리고 그 남자가 처벌이 되면 그 아이는 누가 돌 볼 것인가. 친가 할머니가 계신다고 하지만, 부모 없이 자란다는 것이 문제다.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진주 입장에서도 아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기도 어렵다. 몇 번을 확인을 했다. 정말 아이 아버지 처벌을 원하느냐고. 그렇다고 해서 고소장을 작성했고 조만간 경찰에 제출할 예정이다.
 
행 중 다행인 건, 진주가 그런 일을 겪은 것 치고는 성격이 밝다. 그 와중에 중졸 검정고시도 패스한 걸 보니, 머리도 영리하다. 뭐하고 싶어? 학교 들어가서 공부 열심히 할 거지? 대답이 의외였다. “별로요”. 그 때부터 필자의 일장연설이 시작되었다. 우리 사회의 상대적 빈곤, 빈곤의 대물림, 그 악순환을 끊는 방법은 교육이라는 것, 네가 인생을 막 살면 네 아버지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 공부 잘하면 분명히 주위에서 너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다는 것 등. 필자 말을 이해한 건지, 얼른 끝내라는 의미인지 몇 번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공부의 필요성에 대하여 그닥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근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대물림 된다는 사실이 사회과학적으로 실증되었다. 보건사회연구원이 현재 직장을 다니는 25~64세 남성 1300여 명을 세대에 따라 산업화 세대, 민주화 세대, 정보화 세대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아버지가 대학 이상의 고학력자일 경우 자녀도 대학 이상인 비율이 시대가 바뀔수록 각각 64%(산업화 세대), 79.7%(민주화 세대), 89.6%(정보화 세대)로 갈수록 높아졌다. 또 아버지의 직업이 관리 전문직일 경우 아들의 직업도 관리 전문직일 비율은 42.9%로 조사 대상의 평균인 19%보다 2배 이상 높았다. 반면 단순 노무직 아버지의 자녀도 단순 노무직에 종사하는 비율은 9.4%로 조사 대상 평균의 5배에 달했다. 계층 이동도 줄어들어서, 정보화 세대에서 아버지가 중상층 이상일 때 자식 또한 중상층 이상에 속할 확률은 아버지가 하층이었던 경우 자식이 중상층 이상이 될 확률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았다. 산업화 세대에서 민주화 세대를 거쳐 정보화 세대로 갈수록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과 임금 수준에 더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난의 대물림을 끊는 방법은 ‘교육’이다. 교육은 부모의 재력보다는 본인의 의지가 훨씬 중요하다. 문제는 대개 가난한 부모의 아이들이 교육에 대한 ‘의지’도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고졸로 은행에 들어갔다가 학력차별의 현실을 절감하고 은행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억울해서(?)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그 땐 스스로 공부했다. 진주에게 그 의지를 어떻게 찾아줄 것인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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