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섬이 되어가는 우리 밭

 
봄볕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 볕 좋은 봄 주말, 우리 가족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밭으로 간다. 바람이 아직 차기는 해도, 따스한 봄볕에 찬 기운이 옅어져 가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신발을 신었어도, 발을 타고 전해오는 흙의 부드러운 감촉은 겨우내 움츠렸던 마음의 긴장을 풀어준다.

 
이날은 할 일이 많았다. 먼저 땅속에 묻어두었던 김장독을 열었다. 본래 두 개를 묻었는데, 하나는 2주 전에 캐냈다. 지난주에는 동치미 항아리도 꺼냈다. 이번에 마지막 독을 여는 것인데, 흙을 조금씩 덜어내는 마음은 마치 보물이라도 꺼내는 듯싶다. 아이들을 불러 그 과정을 보게 했다. 뚜껑을 여니, 싱싱하게 잘 익은 김치가 맛있게 눈에 들어왔다. 무 조각을 집어 아이들에게 주니, 먹어보고는 계속 달려들어 또 먹는다. 땅속 항아리 속에서 잘 익은 김치 맛을 아이들도 아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김치냉장고가 나온다 한들, 땅속에서 익은 김치 맛보다 결코 나을 수는 없다. 항아리 바닥에 남은 국물은 그냥 마셔도 좋았다.
 
 
오랫동안 땅속에 있었던 항아리 세 개를 깨끗이 씻어 마당에 놓고 일광욕을 시켰다. 투박하게 생겨 나란히 줄을 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렇게 김치 하나만 보더라도, 직접 김치를 담그고, 항아리를 땅에 묻고, 캐고, 씻고 말리는 과정에서 우리의 정서는 온갖 경험을 한다. 난 오래 전부터 이렇게 다양하게 경험하는 정서 속에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참다운 사랑이 나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아내가 땅에서 꺼낸 김치로 부침개를 하는 사이, 난 둘째 아이를 데리고 마늘과 양파밭에 덮어놓았던 비닐을 거두었다. 평소 비닐을 쓰지 않는다고 자랑하던 오변호사가 비닐을 덮었다니, 의아해할 분들도 있을 것 같다. 원래는 짚을 덮어 겨울을 났다. 지난 주말, 이제는 더 추워질 일을 없을 것이라 여기고 짚을 거두어 태웠다. 그런데 며칠 후 강추위가 몰려온다는 예보가 나왔다. 너무 놀라, 평일 근무시간에 잠시 시간을 내 밭으로 가 비닐을 덮었던 것이다.
 
짚을 태울 때는 짚을 대여섯 무덤으로 나누어 놓고 한꺼번에 불을 놓았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타오르는 불꽃이 장관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바람이 좀 불었는데, 불길이 포도와 딸기 심어놓은 곳으로 옮겨붙고, 밭둑으로까지 타고 갔다. 부리나케 달려가 장화 신은 발로 밟고, 긴 막대기로 때리면서 간신히 불을 잡았다. 산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어 산불까지는 나지 않을 것이나, 밭둑에 심어놓은 대추나무, 두릅나무 같은 것들이 죽을 뻔했다. 나중에 밭에 온 장인어른께 불 놓다가 혼이 난 이야기를 하니, 불은 바람이 불지 않는 오전에, 조금씩 통제가 가능한 범위에서 놓아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장인어른은 놀라지 않았느냐면서 청심환이라도 사 먹으라고 하셨다.
 
 
비닐을 다 걷은 다음에는 감자 심을 밭에 똥거름을 폈다. 똥거름은 2~3년간 밭에서 우리가 눈 똥과 오줌, 밭에서 나온 풀, 집에서 나온 음식물 찌꺼기로 만든 것이다. 그동안 두엄탕에 쌓아놓기만 했는데, 이날 처음으로 두엄탕 속에서 꺼낸, 오래 묵은 거름을 밭에 뿌렸다. 이 똥거름만으로는 부족해서, 사온 퇴비도 뿌렸는데, 앞으로 어느 쪽이 더 잘 될지 궁금하다.
 
 

밭은 우리 가족의 정서를 풍요롭게 하는 너무나도 소중한 곳인데, 얼마나 더 그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걱정이다. 주변 밭들이 팔려나가면서 그곳에 공장이나 사무실이 들어서고 있다. 얼마 전에는 바로 옆 밭이 팔리고, 그곳에선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공사가 한창이다. 거기서 농사짓던 아저씨도 떠나갔다. 점점 우리 밭은 섬으로 고립되어 가고 있다. 불량하게 변해가는 주변 환경 때문에 요즘은 밭에 가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오원근 변호사(법무법인 청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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