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집근처에서 친구를 만나기 위해 서있었다. 코끝이 싸하게 찬 겨울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작년에 졸업한 해윤이 아닌가? 긴가민가하다가 맞구나 싶어 미소가 지어졌다. 눈이 마주친 것 같았는데 해윤이가 나를 스쳐 지나간다. 순간 당황스럽다. 못 알아본 걸까? 모른 척 하는 걸까? 무안한 마음을 추스르고 무심한 듯 서있는 나에게 해윤이가 뒷걸음으로 돌아와 선다. “어~ 선생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 심장이 콩닥거리게 기쁘고 반갑다. 밤이 꽤 늦은 시간인데 교복 차림이다. 학교 수업을 받고 곧장 독서실로 향해 공부하다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서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한다.

3년 전 처음으로 남학생반 담임을 맡아 중2 남자 아이들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투를 벌일 때, 내 마음을 살펴주고 힘을 주던 따뜻하고 사려 깊은 아이였다. 집중해서 공부하려고 독서실을 일부러 혼자 다닌다는 말에 기특하면서도 짠하다. 친구 좋아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녀석인데… 배고프고 지쳤겠구나 싶어 마음이 안쓰럽다.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는 어서 집에 가보라고 등을 떠밀었다.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고 아쉽기도 하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잠시 머뭇거리더니 성큼성큼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에 잔잔한 파도가 일렁인다.

고입 원서를 쓰느라 바쁘던 시기에 학교로 불쑥 찾아온 혜진이가 떠오른다. 4년 전 우리 반이었던 혜진이가 법률사무실에 취직했다며 음료수를 들고 왔다. 내 덕분에 무사히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고 환하게 웃던 혜진이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교무실 선생님들께 음료수를 돌리면서 입이 귀에 걸리게 좋았다. 자식 자랑하는 팔불출 엄마처럼 말이다.

언젠가 마트에서 혜진이 어머니를 뵌 적이 있다. 나를 보고 뛸 듯이 반가워하시더니 장보기를 마치고 가는 나에게 다시 달려와 상자를 내미셨다. 블루베리 농축액인데 먹어보니 맛있더라 하시며 한 상자 꼭 주고 싶단다. 손사래를 치는 내 손에 기어이 들려주시며 마음은 이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을 주고 싶다고 하신다. 당황스럽고 난감하면서도 따뜻하고 고마운 마음에 엉거주춤 받아들었다. 마음으로 주시고 가슴으로 받는다. 

방학이지만 가끔 학교에 나가보면 3학년 아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졸업 동영상을 만드느라 한창이다. 아이들이 벌써 졸업이라니… 울컥 뜨거운 것이 올라온다.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기 위한 준비를 하는 아이들이다. 한 걸음 내딛는 시도가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아프겠지만 스스로를 믿고 함께 하는 사람들을 믿고 한발 한발 나아가길 소망한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고, 그 힘으로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혹은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면 더없이 반갑겠다. 기쁘고 행복하겠다.


추주연 수곡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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